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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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또 역대 최고치 사교육비, 이러고 저출산 늪 빠져나오겠나

2023년 27조1000억, 3년 연속 증가
집값보다 인구 감소에 더 큰 영향
획기적인 공교육 정상화 대책 시급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가 27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교육부와 통계청의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 사교육비 총액 규모는 2021년(23조4000억원), 2022년(26조원)에 이어 3년 연속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사이 학생 수는 7만명(1.3%)이나 감소했는데도 사교육비 총액은 4.5% 늘어난 것이다. ‘의대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능 ‘킬러문항’ 배제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교육비가 늘었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또 사교육비가 얼마나 늘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지난해 사교육비 목표를 24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9% 줄이겠다고 제시했지만 실패했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증가율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이내로 잡겠다고 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무능하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지난해 6월부터 연거푸 내놓은 사교육 경감 대책이 언제쯤 효과를 볼지 답답하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증가세가 현격히 둔화됐다”며 성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안이한 판단이다. 교육부는 늘봄학교 정착, EBS 무료 콘텐츠 강화, 수능 공정성 강화 방안을 통해 사교육비 증가세를 잡겠다고 했다. 말이 아니라 성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높은 사교육비는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저출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쳐 문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쓴다는 오명을 쓰고 있다. 서울 거주 20·30대의 80% 이상이 자녀를 경제적 부담으로 여기는 등 주택 가격보다 사교육비가 저출산에 2, 3배 더 영향을 미친다는 지난해 조사 결과도 있다. “사교육비 폭탄 무서워 아이 낳겠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래서는 저출산 늪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다.

지난해 고소득층이 학원 수강에 지출한 비용이 저소득층보다 6.7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 격차는 개인의 불행을 넘어 국가의 위기다.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사교육비 증가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보여 준다.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깨고 공교육 정상화를 하겠다고 했지만 역부족이다. 공교육이 부실하다 보니 너도나도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가는 것 아닌가. 연간 70조원에 달하는 교육교부금을 흥청망청 쓰면서도 왜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교육 취약계층의 학습 결손부터 꼼꼼히 메우고,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진학에 어려움이 없도록 공교육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 획기적인 공교육 강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