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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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공보의에 '순종 서약서' 요구… 공보의들 “노예 계약서냐”

전공의 집단사직 공백에 파견
복무서약서에 ‘지시에 순종’ 표현
병원 “전문의에 받던 서류… 착오”
일각선 ‘전문의면 괜찮냐’ 지적도

서울의 ‘빅5’ 병원 중 한 곳인 삼성서울병원이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파견된 공중보건의(공보의)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서약서 서명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순종이란 표현을 두고 공보의들은 ‘노예 계약서냐’, ‘억지로 끌려갔는데 순종까지 강요하느냐’는 등의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11일 파견된 공보의들에게 ‘복무서약 및 동의서’ 서류를 최근 발송했다. 논란은 서약서에 적힌 ‘상사의 업무상 지시에 순종하겠음’이란 표현에서 촉발됐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로 병원 현장으로 파견된 공보의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서약서를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모습. 연합뉴스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 관계자는 “해당 서약서를 받은 공보의가 전날 협회 측에 제보했다”며 “요즘 같은 때 ‘순종’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것 자체가 문제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병원 측은 즉각 해명했지만, 해명이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원래 공보의들에게 보내려던 서류가 아니다”면서 “신규 전문의 입사 시 받는 서류 중 하나가 단순 착오로 함께 오발송됐다”고 설명했다. 발송 대상이 잘못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신규 전문의라 하더라도 복무 서약서에 순종이라는 표현을 적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병원 관계자는 “어감이 좀 그렇지만, 상사의 지시에 성실히 따라야 한다는 취지고 의료기관의 특성을 반영한 일반적인 내용으로 볼 수 있다”고 재차 해명했다. 이어 “앞으로 관련 서류에 작성되는 표현을 원 취지가 좀 더 분명하게 반영될 수 있게 바꿀 예정”이라고 밝혔다.

 

파견 공보의들은 전공의와 같은 주 80시간 근무 등에 투입되면서 불만이 큰 상황이다. 정부가 최근 각 병원 등에 내려보낸 ‘의사 집단행동 대응 대체인력 지원·운영 지침’에 따르면 각 기관은 의료인력 상황 및 여건 등을 고려하여 공보의의 근무시간을 주 80시간 이내의 범위에서 정하되 연속되는 야간 근로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인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대본 브리핑에서 정부 대응 방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에 따르면 공보의 근무시간은 주 40시간이다. 공무원법을 적용할 경우 시간외근무는 1일 4시간, 월 57시간까지 할 수 있다. 주 80시간을 꽉 채울 경우 기존 공보의 근무 때보다 한 달간 100시간 이상을 더 일하는 셈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보의 주 80시간 근무 관련 질문에 “전공의가 아니기 때문에 전공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지금 현장의 의료 상황이 매우 쉽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현장에 필요한 의료 수요에 맞춰 기존의 의료진과 원팀이 돼 일을 해주십사 부탁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예림·이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