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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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피부톤 알려드려요”… 맞춤 화장품도 ‘뚝딱’ [이슈 속으로]

테크기업 변모하는 뷰티기업

개인 취향·개성에 최적화된 맞춤 제작
새 프리미엄 화장품 영역으로 떠올라
뷰티 AI 시장 연평균 20% 급속 성장

대화형 뷰티 어드바이저 ‘뷰티지니어스’
입술 진단·메이크업 디바이스 ‘립큐어빔’
휴대용 타투 프린터 ‘임프린투’ 등 주목

“21호는 밝고, 23호는 너무 어두워요.”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 차려진 아모레퍼시픽 ‘톤워크’ 팝업매장을 찾은 대학생 이수현(22·여)씨는 자신을 ‘파데(파운데이션) 유목민’이라고 소개했다. 소비자 피부톤을 21호와 23호 두 가지, 혹은 19호를 포함해 많아야 세 가지 정도로 나누는 획일화된 국내 뷰티 시장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화장품을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이씨는 이날 인공지능(AI)이 얼굴 색상을 진단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오픈 시간에 맞춰 톤워크 매장으로 달려왔다. 톤워크는 AI가 정밀하게 피부톤을 측정하고, 로봇이 현장에서 즉시 제품을 조제해 주는 맞춤형 파운데이션 브랜드다.

AI가 피부톤을 진단해 고객에게 적합한 파운데이션을 찾아주는 데까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모니터에 달린 카메라를 향해 작은 구멍이 있는 ‘쉐이드 카드’를 얼굴에 대고 서 있으면 AI가 곧바로 진단결과를 내놨다. AI는 조색 알고리즘에 기반해 205가지 색상으로 피부톤을 구분하고, 텍스처나 제품 타입 등에 따라 820가지 옵션 중 고객에게 최적화된 제품을 추천했다. 매장 전면에 놓인 커다란 로봇은 AI가 진단한 고객의 맞춤 화장품을 쉴새 없이 제조했다. 맞춤 제조 화장품답게 고객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제품 용기에 새길 수도 있었다.

뷰티기업이 AI와 같은 첨단기술을 활용해 관련 제품을 만드는 테크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AI대전환(AX·AI Transformation)을 통해 단순한 화장품의 품질향상을 넘어 고객경험을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파운데이션 제조 로봇 서울 아모레 성수 매장에서 로봇이 헤라의 실키 스테이 파운데이션을 고객 피부톤에 맞춰 즉석에서 제조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첨단기술 발전·개인화 소비 트렌드…뷰티테크 성장 견인

15일 글로벌 시장조사·컨설팅업체 인사이트에이스 애널리틱에 따르면 뷰티 및 화장품용 AI 시장은 2022년 32억2000만달러(약 4조2407억원) 규모로, 연평균 19.6%로 성장을 거쳐 2031년에는 157억5000만달러(약 20조7427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뷰티테크 시장의 가장 큰 성장요인으로는 관련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꼽히고 있다. 뷰티업계는 AI,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개인의 피부 상태를 분석하고 취향을 반영한 맞춤형 화장품을 추천하는 등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를 구축한다.

또 글로벌 소비자의 개인화 소비 트렌드도 뷰티테크 주요 성장요인으로 분석된다. 개인의 취향과 개성에 최적화된 맞춤제작, 커스터마이징이 다양한 산업에 걸쳐 활성화되면서 뷰티산업에서도 실시간으로 소비자를 파악하고 각각의 세세한 니즈를 반영한 제품을 제공하는 방식이 보편화하고 있다. 동시에 소비자가 개인 맞춤형 화장품을 새로운 프리미엄 화장품 영역으로 인식하면서 개인의 피부 상태나 취향을 반영한 맞춤형 시장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생성형 AI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제품을 추천함으로써 개인화된 소비자 만족도를 높여 브랜드 로열티를 구축할 수 있다”며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싼 가격을 지불하지 않아도 피부 케어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고, 회사는 오프라인 매장을 갖추지 않아도 돼 장기적으로는 마케팅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입술 진단 케어 기기 CES 2024 디지털 헬스부문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아모레퍼시픽 입술 진단 케어·메이크업 기기 ‘립큐어빔’. 아모레퍼시픽 제공

◆피부 진단부터 맞춤형 화장품까지… 소비자 경험 확장

실제로 수년 동안 화장품산업은 전례없는 속도로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을 거듭하고 있다. 로레알그룹의 ‘뷰티지니어스’가 대표적이다. 10PB(페타바이트)에 달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성형 AI를 적용한 대화형 뷰티 어드바이저인 뷰티지니어스를 통해 소비자는 단순한 화장품 구매를 넘어 스킨케어·메이크업 루틴, 제품 추천 등 개인 맞춤형 뷰티솔루션을 받을 수 있다.

랑콤의 ‘합타’는 손과 팔의 움직임이 제한적인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화장품을 바를 수 있도록 설계된 최초의 휴대용 전동 메이크업 애플리케이터다. 기기의 AI 시스템은 특정 사용자의 움직임 및 사용 패턴을 학습해 사용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동작 컨트롤은 보다 최적화된다.

국내 기업들도 뷰티테크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립큐어빔’은 하나의 기기로 입술 진단과 케어, 메이크업이 모두 가능한 신개념 뷰티테크 디바이스다. 사용자가 입술에 디바이스를 대면, 즉각 입술 수분 상태를 감지해 진단 결과를 확인할 수 있으며,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솔대 형태의 화장품 도포 장치에서 개인에게 최적화된 가시광선이 방출되어 입술 케어를 돕는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한국 여성들의 피부 이미지를 바탕으로, 피부 임상 전문가의 평가를 딥러닝해 만든 AI 기반 진단 시스템 ‘닥터 아모레’를 개발하기도 했다.

 

LG생활건강의 미니타투프린터기 ‘임프린투’. 임프린투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고객이 원하는 도안을 고르면 이를 그대로 피부나 적합한 소재의 의류에 쉽게 그려 넣을 수 있는 휴대용 타투 프린터다. LG생활건강 제공

LG생활건강은 휴대용 타투 프린터 ‘임프린투’를 출시했다. LG AI연구원의 초거대 AI ‘엑사원 아틀리에(EXAONE Atelier)’가 만든 ‘꽃·자연’, ‘기하학·도형’, ‘레터링(문자도안)’ 등 다양한 주제의 도안을 누구나 원하는 곳에 구현할 수 있다. 엑사원 아틀리에는 약 3억5000만장의 이미지와 이를 설명하는 문구, 영상 등 각종 정보를 학습한 ‘멀티모달(복합정보처리)’ AI이다.

서광규 상명대 교수(경영공학)는 최근 ‘AI와 화장품’을 주제로 열린 화장품 혁신 세미나에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기술을 접목한 신제품이 쏟아지고, 소비자들 또한 다양한 니즈에 맞게 이를 찾게 되면서 선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