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종섭 주호주 대사의 조사 시기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공수처는 20일 오후 “현재 수사팀이 언론 보도만 접한 상황이어서 특별히 말씀드릴 입장이 없다”고 공지했다. 이날 오전 이 대사의 귀국 소식이 전해진 뒤 언론 문의가 빗발치자 내부 논의를 거쳐 일괄적으로 설명하겠다고 밝힌 지 약 4시간 만이다. 이 대사가 전격 귀국하면 조속한 소환조사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공수처 내부적으로는 다소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국방부 조사본부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의 포렌식 작업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다. 압수물 분석과 함께 하급자부터 차례로 조사하며 사실관계를 다진 뒤 '윗선'인 이 대사를 소환해야 하는데, 아직 부하 직원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공수처는 여권의 조기 소환 압박에 밀려 알맹이 없는 형식적 조사를 반복하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조사 시기를 조율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대사가 귀국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전날 오후 변호인을 통해 조속히 조사 기일을 지정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한 이 대사는 귀국한 이후에도 신속한 조사를 촉구하는 입장을 거듭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조사가 늦어질 경우 여권의 ‘수사 지연’ 주장에 힘이 실리고 공수처는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반대로 이 대사를 서둘러 불렀다가는 충분한 조사도 하지 못한 채 당당히 호주로 돌아갈 명분만 만들어주는 셈인 만큼 공수처도 고민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이 대사가 출국하기 전인 지난 7일 이 대사를 4시간 동안 약식 조사했다가 수사 실익 없이 출국 금지 해제 명분만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공수처는 당분간 대외적으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이 대사의 국내 체류 기간 등 일정을 파악하고, 내부적으로는 자료 분석에 속도를 내 적절한 소환 일정을 고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휘부가 수시로 바뀌는 공수처 내 난맥상은 변수가 될 수 있다. 공수처는 지난 1월 말 김진욱 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잇달아 퇴임한 뒤 두달째 지휘부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당초 직제상 3순위인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았으나 그가 지난 4일 사직서를 내고 휴가를 떠난 뒤엔 송창진 수사2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박석일 수사3부장이 차장 대행을 맡았다.
하지만 김 부장이 사직서 수리 전 휴가에서 복귀하면서 이날부터 김 부장검사의처장 대행 체제로 되돌아갔다.
차기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공수처장 최종 후보로는 판사 출신인 오동운(55·사법연수원 27기) 법무법인 금성 파트너변호사와 검사 출신인 이명순(59·22기) 이명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가 지난달 29일 추천됐으나, 이후 20일이 지나도록 지명이 미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