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에 따른 의료 대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업무개시명령이 강제노동 금지 위반이라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요구가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해 배척됐다. ILO는 전공의들의 개입(인터벤션·intervention) 요청에 대해 노사단체가 아니다라며 ‘자격없음’으로 자체종결처리했다고 노동부가 어제 밝혔다. ILO는 노사단체의 ‘의견 조회 요청’ 자격을 노사정 구성원인 정부 또는 국내외 대표 노사단체로 국한한다. ILO 판단으로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 거부 명분이 퇴색했다.
그제 의대 입학정원 증원분(2000명)의 대학별 배분을 확정한 정부가 어제는 전공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다음 주부터는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에 나선다. 이달 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입장은 확고하다. ‘5년간 매년 의대정원 2000명씩 확대’ 시나리오는 착착 진행될 것이다. 어제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맞춰 2027년까지 국립대 병원 전임교원을 현재 1700명에서 1000명 더 늘리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공의에 대한 대규모 면허정지 처분으로 향후 몇 년간 초유의 의료 공백이 생기더라도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다.
아직 대화의 불씨는 남아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의대 정원에 대한 심의·조정을 거치고 5월 중 신입생 모집요강을 확정하면 그나마 남아있던 대화의 창구는 닫힐 것이다. 의대 증원은 의사단체를 빼고는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시대적 과제다.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잊은 채 가운을 벗어던지거나 수업을 거부하는 행태는 직역이기주의라는 비난과 의대 증원의 명분만 키울 것이다.
그런데도 의료계는 강경 투쟁을 고집해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14만 의료인의 정권퇴진운동’ 운운할 때가 아니다. “폭주기관차”(방재승 의대교수 비대위원장), “파시스트 정부”(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등 원색적 비난은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다. 명분과 실리를 잃은 진료 거부를 중단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부의 의대 증원이 불합리하다면 대안을 제시하고 해법을 찾는 게 순리다. 전공의 과잉노동 문제와 필수의료 수가 인상,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방안도 전문가 입장에서 보완점을 제시해야 한다. 이번 의대 증원이 파국이 아닌 의료 개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대화 테이블에 나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사설] ILO가 외면한 전공의, 명분 없는 집단행동 접고 복귀해야
기사입력 2024-03-21 23:12:28
기사수정 2024-03-21 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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