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A씨는 지난해 인근 다른 아파트로 이사했다. 목적은 아이의 전학이었다. 소위 ‘학군지’(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가 있는 지역)라 불리는 곳에 있는 학교에 입성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한 반에 18명 남짓이던 기존 학교와 달리 전학 간 학교는 한반 인원이 40명에 가까웠다. A씨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놀랐다. 선생님이 잘 봐주실 수 있을지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이런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전학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면서 문을 닫는 학교가 늘고 있지만, 학부모 선호도가 높은 지역에는 아이들이 계속 몰리면서 과밀학급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역 쏠림 현상이 심화하면서 학급당 학생 수도 ‘빈익빈 부익부’가 되는 추세다.
21일 전국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초등학생 수는 2019년 274만7000명에서 지난해 260만5000명으로 줄었다. 4년 사이에 14만명 넘게 줄어든 것이다. 통계청은 2030년에는 초등학생이 161만명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학급당 학생 수도 2012년 전국 평균 24.3명에서 2021년 21.5명으로 줄었다. 현재는 지역에 따라 20명이 안 되는 곳도 많다.
하지만 한쪽에선 여전히 과밀학급(28명 이상) 문제가 심각하다. 과밀학급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학군지 선호’ 현상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가기 위해선 초등학교부터 ‘유명 학군’에서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초등학생들이 특정 지역으로 몰리는 것이다.
대전의 대표적인 학군지라 불리는 한밭초의 경우 전교생이 1715명으로,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34.3명에 달한다. 4학년은 학급당 평균 인원이 36.9명이나 된다. 이는 대전 평균(19.9명)의 1.8배에 이르는 수치다. 교사당 학생 수는 29.1명으로 대전 평균(12.5명)의 두 배가 넘는다.
이 지역에 학교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한밭초 반경 1㎞ 안에는 초등학교가 4개나 더 있다. 400m 떨어진 문정초의 전교생은 한밭초의 3분의 1 수준인 519명,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20.9명이다. 600m 떨어진 서원초도 전교생 630명, 학급당 학생 수 22.5명에 그친다.
한밭초에 몰리는 것은 중학교 학군과 인접한 대규모 학원가 때문이다. 한 학부모는 “걸어서 거의 모든 학원을 다 갈 수 있다. 중·고교까지 생각하면 학원 가까운 곳이 최고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한밭초-○○중-○○고’ 라인이 좋은 대학으로 가는 관문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학군지 중 하나인 양천구 목동의 목운초도 학급당 평균 학생 수가 31.3명으로 서울 평균(21.3명)보다 10명이나 많다. 목운초 학부모는 “위장 전입도 많아 이사 온 집은 학교에서 방문조사를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선호 학교로 학생이 몰리는 가운데 한쪽에선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도 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통폐합 학교는 전국 21개교로, 19곳(90.5%)이 초등학교였다. 강 의원은 “지역별 교육 격차는 더 심각해지고 신도시 지역은 과밀학급과 교원 부족 문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밀학급 이면에는 결국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몇 년 전 목동으로 이사한 학부모는 “어디서든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며 “지역에 따라 공교육 격차가 커서 학군지로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