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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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상황실·선대위 불협화음… ‘종북’ 현수막 걸려다 취소 촌극

총선 코앞 선거전략 엇박자

‘범죄자·종북세력에 내주지 말자’
윤재옥 “전국에 걸라” 긴급 지시
韓, 뒤늦게 보고받고 즉각 제동

영남 인사로만 구성 선거 상황실
韓 지휘 총괄선대위와 이견 노출
판세 브리핑도 따로… 신경전 양상
수도권 후보들 “중도 한 표가 절실”

4·10 총선을 보름 앞둔 26일 국민의힘이 내부 ‘파워게임’으로 홍역을 치렀다. 윤재옥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일부 인사들이 ‘종북세력·범죄자’ 등 강성 이념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걸려던 시도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나서 정면으로 제동을 걸었다. 당선이 절박한 수도권 등 험지에 출마한 후보들은 이날 촌극에 대해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전날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윤 원내대표가 게첩을 지시한 ‘더 이상 이 나라를 범죄자들과 종북세력에게 내주지 맙시다’라는 현수막 문구를 이날 뒤늦게 보고받고 즉각 철회를 지시했다. 장동혁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한 위원장은 여당으로서 역할에 집중할 때이고 무엇을 할 것인지 메시지를 국민께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며 “최종적으로 그 홍보 문구는 사용 안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윤 원내대표가 “많은 유권자가 볼 수 있도록 적극 게첩해 주기 바란다”며 긴급 지시한 내용이 하루 만에 뒤집힌 것이다. 이 지시는 시·도당을 통해 각 후보자 선거사무소와 비례대표 정당인 국민의미래에도 전달됐다.

 

의아한 점은 그동안 ‘발목 잡힌 민생입법’, ‘국민의힘은 일하고 싶습니다’ 등 야당을 겨냥하면서도 여당의 정책을 알리는 방식의 홍보 문구를 채택해 온 기조가 갑자기 변했다는 것이다. 특히 정당의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광고물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28일부터는 사용할 수 없어 이틀짜리 ‘종북세력‘ 현수막을 게첩하려 한 진의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당 안팎에서는 최근 여당의 지지세가 꺾이면서 당내 TK(대구·경북)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강성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를 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국민의힘 선대위를 둘러싼 파워게임이 자리한다는 해석도 있다. 총괄선대위원장인 한 위원장 중심의 한 축과 영남권으로 구성된 종합상황실이란 다른 축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홍석준 선대위 상황실 부실장이 판세와 관련한 브리핑을 진행했으나 장 사무총장이 이날 오후 총괄본부장 명의로 현안 관련 브리핑을 공지하고 다시 판세에 대해 언급한 것이 양측의 신경전을 보여주는 단편이란 해석도 나온다. 다만 한 위원장도 충돌로 인식되는 것은 경계했다. 한 위원장은 현수막 논란과 관련해 “말이 잘못됐단 취지가 아니라 국민께 더 좋은 말을 내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중앙선대위의 총괄선대위원장, 장 사무총장은 총괄본부장을 맡고 있지만 실제 전국 254개 선거구와 비례대표와 관련해 시시각각 벌어지는 다양한 정보가 먼저 모이는 곳은 상황실이다. 당 사무총장을 지낸 경북경찰청장 출신 이만희 의원(경북 영천·청도)이 상황실장을 맡았고, 부실장에는 정희용(고령·성주·칠곡)·홍석준(대구 달서갑) 의원, 대통령실 법률비서관 출신 주진우 후보(부산 해운대갑)로 구성돼 있다. TK·PK(부산·경남) 인사 외 수도권이나 충청권 인사는 1명도 없다.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 뉴시스

당의 공약 발표를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전날 오전 한 위원장은 세 자녀 이상 대학 등록금 지원 등 저출생 대책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오후 당 상황실을 중심으로 불법 채권추심 땐 대부계약 원천 무효라는 내용의 민생 자산형성 지원 공약을 추가로 발표했다. 통상 하루 동안 소화될 수 있는 메시지의 양은 제한적인데 이를 두고 오전 오후 각기 다른 공약이 나와 당 안팎에선 효율적이지 못한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수도권 출마자들은 당이 계속 수도권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한 수도권 후보 캠프 관계자는 통화에서 “중도층의 한 표가 절실한 상황에서 보수층을 향한 이념 현수막 문구를 낸 것을 보고는 눈앞이 캄캄했다”며 “최근 현안에 대한 당의 대응이나 메시지, 일정 등도 수도권의 절박함과는 괴리가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당에서 중도층의 목소리가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통화에서 “선대위 구성부터 중도층을 대변하거나 당의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낼 인사가 배제됐다”며 “중도 확장을 담당할 당내 인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병욱·김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