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어제 “일본과의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며 향후 일본과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내놓은 담화에서 “일본은 역사를 바꾸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며 새로운 조·일(북·일) 관계의 첫발을 내디딜 용기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그제 담화를 통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로부터 또다시 정상회담 제의를 받았다”고 밝혀 북·일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왔는데 분위기가 바뀐 형국이다.
양국이 회담 의제와 조건을 사전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컸던 게 분명하다. 김 부부장이 “(일본은) 저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 무슨 핵·미사일 현안이라는 표현을 꺼내 들며 우리의 정당방위에 속하는 주권행사를 간섭하고 문제시하려 들었다”고 비판한 것에서 내막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일본에게도 최대 안보 현안이다. 북·일 회담을 하면서 의제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를 문제 삼는 북한 태도야말로 비상식적인 처사가 아닌가.
북·일 정상회담은 2002년과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평양 방문으로 관계 정상화의 큰 틀이 마련됐지만 이후 납치 문제의 갈등으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북·일이 이번에 정상회담을 타진한 것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과 각종 도발로 유엔 및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어 일본을 지렛대로 돌파구를 열어야겠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한국·쿠바 수교로 고립이 더해진 상황에서 이를 상쇄하고 한·미·일 대북 공조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납치 문제 등을 해결해 하락하는 지지율을 반전할 계기가 필요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 부부장이 “전제 조건 없는 조·일(북·일) 수뇌회담을 요청하면서 먼저 문을 두드린 것은 일본 측”이라고 주장한 것만 봐도 그렇다.
북·일 정상회담이 완전히 꺼진 불은 아닐 것이다. 뒷짐 지고 관망만 해선 안 될 일이다. 한·미·일의 대북 공조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일본과의 소통을 강화해 북한의 요구 조건과 반응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이 작전계획 수립과 훈련 강화를 위해 주일미군사령부의 지위를 격상하는 것도 우리 안보에 유리하게 작용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만큼 시시각각 변하는 한반도 상황 대처에 한 치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