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냐, 기세냐. 2023~2024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을 지배할 두 키워드다.
정규리그 1위 대한항공과 3위 OK금융그룹은 29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리는 챔프전 1차전을 치른다.
2020~2021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정규리그와 챔프전을 모조리 집어삼킨 대한항공은 전인미답의 고지인 통합우승 4연패에 도전한다. 과거 삼성화재가 2007~2008시즌부터 2013~2014시즌까지 챔프전 7연패에 성공한 적 있지만, 정규리그 1위와 챔프전을 모두 거머쥐는 통합우승은 3년 연속이 최장 기간이었다. 대한항공이 이번 챔프전에서 OK금융그룹을 꺾어낸다면 새 역사를 쓰게 되는 셈이다.
대한항공은 주축 선수들의 부상 속에 앞선 세 시즌보다는 다소 부진하면서 올 시즌엔 정규리그 1위를 놓치는 듯 했다. 자력 우승이 가능했던 우리카드가 시즌 막판 2경기를 내리 패하면서 대한항공은 극적으로 정규리그 4연패에 성공했다. ‘어부지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순 있지만, 역사는 결과만 기억하는 법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14일 KB손해보험전을 끝으로 챔프전을 위해 충분히 휴식하며 컨디션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플레이오프까지 3경기를 치르고 올라온 OK금융그룹에 비해 체력적인 면에선 대한항공이 확실히 우위에 서있다.
대한항공은 통합우승 4연패를 위해 외국인 선수 무라드 칸(파키스탄)을 내보내고 막심 지가로프(러시아)를 데려오며 마지막 승부수까지 띄웠다. 막심은 2m3의 신장의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로, 러시아 국가대표로 뛰며 2015, 2017년 유럽 대회 우승을 차지한 적 있는 선수다. 러시아 자국 리그 외에도 폴란드,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양한 리그를 거쳐 최근까지 카타르 리그에서 뛰었다. 카타르 리그에서는 득점 1위, 서브 2위에 올랐다.
대한항공이 OK금융그룹에 가장 앞서는 부분은 지난 세 시즌 모두 챔프전을 이겨냈다는 경험이다. 현역 최고의 세터로 꼽히는 1985년생 동갑내기 듀오인 한선수, 유광우의 안정된 공격 조율 아래 곽승석, 정지석, 정한용으로 이어지는 아웃사이드 히터진이 안정된 리시브와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올 시즌 대한항공 정규리그 1위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아포짓 임동혁도 막심과 함께 팀 공격을 이끌 태세다.
OK금융그룹은 이번 챔프전 이전 마지막 챔프전 경험이 8년 전인 2015~2016시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선수단 전체로 보면 큰 경기 경험은 대한항공에 비해 확실히 밀리지만, 2014~2015, 2015~2016 챔프전 2연패를 이끌었던 주전 세터 곽명우를 비롯해 아웃사이드 히터 송희채, 리베로 정성현 등이 남아있어 젊은 선수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면 경험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OK금융그룹이 대한항공보다 앞서는 부분은 기세다. 준플레이프 단판 승부에서 현대캐피탈을 3-2로 극적으로 이기고, 플레이오프를 2전 전승으로 끝내면서 선수단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러있다. 지난 25일 플레이오프 2차전을 마치고 송희채는 “오늘 뛰면서 8년 전의 좋은 기억이 떠오르긴 했다. 선수단 안에서 해볼만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V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레오의 존재감도 크다. 과거 20대 초반 삼성화재 왕조의 일원으로 두 차례 챔프전 우승을 경험한 레오는 큰 경기에서는 그 위력이 배가 되는 선수다. 대한항공에도 아직 베일에 쌓여있는 막심이나 임동혁, 정지석 등의 공격수들이 있지만, 클러치 상황에서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에이스 싸움에선 레오를 보유한 OK금융그룹이 앞선다는 평가다. 레오는 한 경기 77%의 공격 점유율을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팀 공격을 혼자 도맡아도 위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선수다. 단기전에선 확실한 에이스의 존재 유무가 승부를 가르는 만큼, 레오가 폭발한다면 OK금융그룹이 8년 만에 V3를 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