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휴대폰 들어가는 길이에 금장 로고로 하나 더 내주세요”, “로고 손톱만 하게 줄이면 대박 날 듯”, “줄도 은색에다가 로고도 은장으로 나오면 예쁠 듯….”
지난해 2월 패션회사 LF의 유튜브 채널 ‘LF랑 놀자’에 올라온 한 영상에 댓글 400여개가 줄줄이 달렸다. 조회수 400만회를 넘어선 해당 영상 속 주인공은 연예인도, 인플루언서도 아닌 LF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이 직원이 착용한 ‘닥스’의 ‘블랙 DD로고 소가죽 미니 크로스백’은 영상 업로드 열흘 만에 매출 1억원 이상을 올리며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가방은 3월 현재까지 누적 매출 5억원을 기록하며 수차례 리오더를 진행했다.
제품을 구매한 고객 중 신규 유입된 고객이 80% 이상에 달했다. 대부분 20∼30대 여성으로, 중장년층 패션 브랜드로 여겨졌던 닥스가 유튜브 영상을 통해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자)로 고객층이 확장된 것이다. LF 측은 댓글에 남겨진 고객 반응과 요청 사항을 24SS 신상 컬렉션에 즉각 반영해 출시했다. LF 관계자는 “패션 분야에 가장 깊게 맞닿아 있는 패션회사 직원들이 직접 착용하고 소개하는 아이템에 대한 신뢰와 호감도가 콘텐츠에 대한 적극적인 호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직원 경험담에 매출 ‘쑥’
최근 임직원을 활용한 ‘임플로이언서’ 마케팅이 매출 견인은 물론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필수 홍보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임플로이언서는 직원을 뜻하는 ‘임플로이(employee)’와 인플루언서의 합성어. 유명인을 내세운 상업적 광고 대신 직원이 자사 제품에 대한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마케팅으로 소비자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29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패션부문 홍보팀이 운영하는 ‘알꽁티비’는 비공식 채널임에도 구독자 10만3000명에 달한다. 이 채널 역시 직원들의 일상과 이른바 ‘출근룩’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통해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8일과 15일에 게시된 삼성물산 패션 브랜드 ‘샌드사운드’, ‘디애퍼처’ 편은 노출 다음 날 네이버 검색량이 3∼5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영상에서 소개된 디 애퍼처의 빈티지 맥 재킷’, ‘필리츠 스커트’ 등은 전주 대비 3배 이상 판매됐다.
무신사가 운영하는 ‘무신사TV’에서도 브랜드의 다양한 스토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콘텐츠 ‘더브랜드’ 등이 매출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24SS 컬렉션을 발매한 ‘유스’를 더브랜드에서 소개하자 직전 일주일 대비 45% 증가했다.
패션업계뿐만이 아니다. 구독자 21만명을 목전에 둔 민음사 공식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는 출판사 유튜브로는 이례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데미안’이나 ‘호밀밭의 파수꾼’ 등 유명 작품 위주로 판매되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구르브 연락 없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도둑 신부’ 판매가 증가한 것도 모두 임플로이언서의 힘이다. 직원들이 영상을 통해 책을 소개한 이후 판매량은 평균 10배 정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홍보’보다 ‘재미’가 먼저
업계 관계자들은 임플로이언서 마케팅의 핵심은 ‘재미’라고 입을 모은다. 제품 홍보는 그다음이라는 것. 동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인위적인 홍보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임플로이언서 마케팅은 제품 홍보를 전면에 드러내기보다는 직원들의 회사 생활을 보여주거나 경쟁사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구독자를 당장 구매로 이끌기보다는 직원의 목소리를 통해 친근감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기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전략이다. 상당수 임플로이언서 영상들이 회사의 관여 없이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역량으로 기획·제작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임플로이언서 마케팅은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한편 구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장으로 활용돼 상품 제작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무신사TV 영상에서 소개된 ‘이우가마카라스’의 ‘트리플 커버드 크로우 버클 백’은 조회수 400만회를 기록하며 단종 위기에서 구사일생해 재발매됐다. 해당 제품은 올해까지도 베스트셀러로 꼽힐 만큼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LF야 놀자에 소개된 ‘아떼’의 바네사브루노 백팩은 업로드 후 매출이 약 20배 급증하자 컬러와 크기를 다양화하며 라인업을 확대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인플루언서보다 기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직원의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 마케팅 비용을 낮추면서도 효과를 증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알꽁티비는 비공식 채널로 처음에는 제품 홍보 목적이 아니었지만 삼성물산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알꽁티비를 보고 입사 지원을 하는 청년들도 크게 늘었다”며 “임플로이언서를 통한 세련된 콘텐츠를 제작해 패션에 관여된 고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