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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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퇴로 끝난 이종섭 논란, 與野 정쟁 접고 정책으로 승부를

임명 25일 만에 사태 수습 만시지탄
“이대론 총선 참패” 與 위기감 반영
중도층 표심 이동, 판세 반전 촉각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어제 사퇴했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 이 대사의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부의 보고를 받은 뒤 이를 재가했다. 주호주 대사로 임명된 지 25일 만이고, 지난 21일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회의 참석차 귀국한 지 8일 만이다. 만시지탄이나 사필귀정이다. 이 대사 거취문제가 이처럼 오래 끌 일이었나. 핵심 우방국인 호주 주재 대사가 또다시 공석이 됨에 따라 ‘외교 결례’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윤 대통령이 이 대사의 사의를 수용한 것은 4·10 총선을 열흘 앞두고 민심 이반이 심각한 데다 국민의힘 총선 후보들의 자진 사퇴 요구가 거세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임 후 공수처 수사를 받는 게 국민 눈높이’라는 여론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대사 사퇴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져 총선 판세 반전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이 대사 파동은 두말할 필요 없이 대통령실과 외교부의 자충수였다. 애초부터 피의자를 지난 4일 주호주 대사로 임명한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더구나 이 대사는 지난해 12월부터 공수처 출국금지대상이었지 않은가. 수사 회피·도피성 출국 의혹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국민들은 왜 윤 대통령이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하게 됐는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민들이 조국 사태 등으로 무너진 공정과 원칙, 상식의 가치를 바로 세워줄 것으로 기대해 대선에서 표를 준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대사 파동은 선거의 키를 쥔 중도층 표심을 요동치게 했다. 선거 초반에 비해 야당 심판보다 정부 견제 여론이 훨씬 높아진 것은 민심이 이 대사 문제로 얼마나 악화됐는지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방탄 공천’으로 국민의힘의 압승이 전망되던 판세가 100석도 위태로운 지경까지 이른 것은 대통령의 불통 리더십 탓이라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민심에 맞서는 지도자가 성공한 전례는 없다.

 

이 대사가 사퇴한 만큼 공수처는 미적거릴 게 아니라 즉시 이 대사를 소환해 수사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국방부 차관과 법무관리관 등 이 대사 하급자에 대한 조사를 마치지 못해 이 대사 소환이 어렵다고만 할 게 아니라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 대통령실도 밀실·불통 인사가 어떤 불행을 낳는지를 이제라도 깨닫고 이런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야당이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는 등 정쟁을 확대하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가면서 여야 할 것 없이 막말 논란 등으로 혼탁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여야는 이 대사 거취가 정리된 이상 수사는 공수처에 맡기고 이제라도 네거티브 공세가 아닌 정책과 비전 경쟁을 하면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