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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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교과서에 실린 BTS의 연설 [이지영의K컬처여행]

최근 칠레의 7학년(12세에서 13세)을 위한 ‘문학과 언어’ 교과서에 BTS의 리더 RM 김남준의 사진과 BTS의 첫 유엔 연설문이 실렸다고 한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에 무언가가 실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본 인물이나 글에 대해서 우리는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고 그 의미와 내용을 받아들인다. 마치 그것을 지식이나 교양의 표준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솔직히 나는 칠레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몇 차례 BTS를 포함해 한국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들이 있었던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2018년 우리 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른 칠레 축구 대표팀은 수원 시내 한복판에서 비속어를 섞어가며 눈이 작은 아시아인들을 비하하며 “눈을 떠라 이놈들아”라고 외치는 영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려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이 사건 얼마 전에도 한 선수가 우리나라 팬과 사진을 찍을 때 손가락으로 눈을 찢는 전형적인 아시아인 인종혐오 행동을 해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다.

 

2021년에는 칠레의 한 공중파 채널의 코미디 프로에서 BTS로 분장한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이름을 김정우노, 김정도스, 김정트레스라며 북한 노동당 총비서 이름에 숫자를 붙여 한국과 북한을 뒤섞는 어이없는 행동을 보인 데다 진행자가 그것이 무슨 의미냐고 묻자 엉터리 중국어 흉내를 내며 “나 백신 맞았어요”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아시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아시아인에 대한 조롱과 혐오를 드러낸 행동이다. 이 글에서는 지면의 한계로 칠레에서 일어났던 인종차별 논란에 대해서만 예를 들었지만, 인종혐오는 칠레에만 한정된 문제는 결코 아니다. 알다시피 인종차별 및 인종혐오는 뿌리 깊고 광범위한 고질적인 인류의 문제 중 하나이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칠레의 어린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RM의 연설을 읽고 그에 대한 질문들에 답을 하는 내용이 포함된 교육 과정은 훗날 칠레의 인종차별 의식을 약화시키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지식과 교양의 표준이라고 할 교과서에서 한 한국인의 사려 깊은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며 자란 이들의 의식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K팝의 성공은 문화 수출, 소프트파워의 증대, 국가 브랜드 제고의 의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영향력은 어쩌면 훗날 인종혐오를 약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