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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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관과 신사'에서 리처드 기어 갈군 고셋 '하늘나라로'

장교 후보생들 훈련시키는 해병 부사관 役
흑인 배우 최초로 오스카 남우조연상 받아
"끝내 주연 배우는 못해"… 인종차별 '반감'

할리우드 영화 ‘사관과 신사’(1983)에서 미 해군 장교 후보생들을 사납게 훈련시키던 흑인 부사관을 기억하는 영화팬이 많을 것이다. 바로 그 역할을 맡은 배우 루이스 고셋 주니어가 29일(현지시간)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흑인으로는 처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기록을 갖고 있다.

미국 배우 루이스 고셋 주니어(1936∼2024). 할리우드 영화 ‘사관과 신사’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흑인으로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AP연합뉴스

AP 통신에 따르면 고셋은 이날 오전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 근처 산타모니카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족은 사망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구체적 사인을 밝히진 않았다. 다만 고인은 과거 전립선암을 앓은 적이 있고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도 했다.

 

고인은 1936년 5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범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어릴 때부터 노래와 연기에 소질이 많았던 그를 눈여겨본 교사의 제안으로 장차 뮤지컬 배우가 되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1953년 16세 어린 나이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하긴 했으나 당장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다만 장학금을 받고 뉴욕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에도 TV 쇼 등에서 노래와 연기를 계속했던 고인은 1959년에야 비로소 브로드웨이 무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는 뮤지컬계 스타로 떠올랐다.

 

이를 발판 삼아 고인은 영화계에 진출했다.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는 흑인들에게 냉담했다. 고인은 여러 영화에 얼굴을 내밀었으나 늘 조연에 그쳤다. 40대 중반에 출연한 ‘사관과 신사’에서 고인은 말 그대로 열연을 펼쳤다. 이 영화는 불우한 가정 출신인 잭 마요(리처드 기어 분)가 미 해군 항공사관 후보생으로 입대해 장교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고인은 해병대 부사관 에밀 폴리 역을 맡아 앞으로 장교가 될 후보생들을 혹독하게 훈육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1983년 할리우드 영화 ‘사관과 신사’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미국 배우 루이스 고셋 주니어가 트로피를 든 채 활짝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훈련 기간 내내 마요에게 특히 엄했던 폴리가 임관식 당일 해군 소위 계급장을 단 마요한테 거수경례를 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에 해당한다. 고인이 흑인으로는 처음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유다. 그로부터 한참 지난 2010년 펴낸 회고록에서 고인은 ‘사관과 신사’로 받은 아카데미상을 거론하며 “흑인 배우로서 내 입지가 얼마나 커졌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오스카 수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음에도 고인에게 영화의 주연 자리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수상 후에도 내 역할은 전부 조연뿐이란 점이 바뀌지는 않았다”고 한탄했다. 젊은 시절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량 운전 도중 경찰관의 검문을 받기도 했던 고인은 직접 재단을 만들어 오랫동안 인종차별 철폐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고 AP는 전했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