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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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조선미의 원천’…일본문화재가 된 한반도 미술의 안식처 [일본 속 우리문화재]

◆자유와 대담…조선미의 원천

일본민예관 소장 분청사기

일본민예관은 한반도 유래 문화재 17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전체 소장품의 약 10%에 해당하는 숫자다. 도자기(800여 점), 가구 등 목공예품(400여 점), 회화와 석물(각 200여 점), 금속공예품과 종이공예품(각 100여 점) 등 종류가 다양하다. 외국의 한반도 문화재 소장처 어느 곳과 비교해도 꿀릴 게 없는 수량에 일단 눈길이 가지만 그것이 가진 전반적인 특징이 독특하고, 각별하다.

일본민예관 소장 민화 

“무슨 일에나 무심하고 집심(執心·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불이’(不二)의 경지에 달해 있어 마음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자유에 조선 작품의 아름다운 원천이 있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민예관 설립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런 기준에 따라 수집에 나섰고, 지금의 컬렉션을 거진 완성했다. 예외가 없지 않지만 격식있고 정제된 아름다움보다는 자유, 대담, 단순, 추상 등의 단어가 어울리는 공예품이 많다. 제작의 주체는 엘리트 예술가보다는 직접 만들고, 사용한 민중이다. 야나기가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현실에 울분을 토하며 예술을 통한 서로의 존중을 설파하고, 그런 신념을 나름의 방식으로 실천했던 지식인이었다는 점에서 민예관은 우리에게 더욱 특별하다. 

 

◆‘이런 곳이라 다행이다’

일본 도쿄 메구로구 고마바 일본민예관 건물. 

민예관이 자리잡은 도쿄 메구로구 고마바는 근사한 동네다. 조용한 거리에 단정한 단독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민예관은 그곳의 하이라이트처럼 보인다. 주변과 잘 어울리면서도 기운은 유독 당당하다.

일본민예관 입구

 

일본민예관 정원에 전시된 석물

‘이런 곳이어서 다행이다.’

 

1700여 점 한반도 유래 문화재의 거처가 이처럼 근사해서 종종 드는 생각이다. 이런 곳이어서 그것의 가치가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일본민예관 내부
일본민예관 외부에 설치된 조형물. 
일본민예관 전시실.

1936년 준공한 오래된 건물은 중후한 격조를 갖췄다. 대단히 꾸미겠다고 의도한 티가 전혀 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무게감이 매력이다. 목조 바닥은 발을 디디면 이따금 삐걱되지만 그것마저 건물에 드러운 오랜 시간의 증표처럼 느껴져 정겹다.

일본민예관 설립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생활했던 집.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는 야나기가 72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살았던 근대 일본풍 주택이 있다. 서관이라 불린다. 두 건물은 2021년 2월 도쿄도지정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역사적 혹은 학술적 가치’가 높고, ‘유파적 혹은 지역적 특색’이 현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일본 문화재 당국은 “민예운동의 활동거점으로 건축되어 우리나라(일본)의 문화사에 가치가 있는 건물이고 야나기 자신이 기본설계를 해 그의 사상이 체현된 도쿄도 내 유일하게 남은 건물로서 귀중하다”고 지정 이유를 밝혔다.      

 

민예관 측은 “야나기가 중심이 돼 설계한 것으로 외관과 각 전시실은 일본풍 디자인을 기조로 하면서도 곳곳에 서양풍을 접목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건물로 보는 일본 최고가문의 생활 

구 마에다 가문 양관

민예관은 건물 그 자체로 꽤 볼 만하다. 비슷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민예관 인근 코마바 공원의 건물 하나를 추천한다. 20세기 초 일본 사회의 정점에 있었던 가문의 생활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롭다. 

 

구(舊) 마에다(前田) 가문 화관·양관(和館·洋館)은 일본 중요문화재다. 양관이 1929년, 화관이 이듬해 준공됐다. 일본군 대장을 지낸 마에다 토시나리(1885∼1942)가 지었다. 마에다는 에도시대 카가, 노토, 엣츄 지역 대부분을 영지로 했던 마에다 가문의 16대 당주였다. 일본식 건물인 화관은 외국인에게 일본문화를 전달하기 위해, 서양식인 양관은 손님 접대를 위해 지었다. 건물 정문과 그 문에 이어 만들어진 사무실, 돌담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차 대전 종전 후 일본을 한동안 지배한 연합국최고사령부(GHQ) 관저와 사무실로 사용됐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