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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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경쟁과 스포츠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하계올림픽 우승국은 소련(현 러시아)이었다. 금메달 49개, 은메달 41개, 동메달 35개를 따냈다. 3위에 그친 미국(금 34, 은 35, 동 25)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그런데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이 대회에서 2위는 금메달 40개를 거둔 동독, 4위는 금메달 10개를 차지한 서독에게 각각 돌아갔다. 동서독이 분단돼 있던 시절 동독이란 작은 나라가 미국을 앞지른 것도 놀랍지만, 동독과 서독의 금메달 수를 더하면 무려 50개나 돼 1위 소련보다도 1개가 더 많다. 통일 국가였다면 우승을 했을 것이란 얘기다.

2005년 8월 전북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동아시아연맹(EAFF) 축구선수권대회 여자축구 남북 대결에서 한국 선수(왼쪽)와 북한 선수가 공을 다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두 독일 중에서도 특히 동독 스포츠의 성취가 눈부셨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동서독이 따로 출전한 마지막 하계올림픽이다. 여기서 동독은 금메달 37개, 은메달 35개, 동메달 30개를 따냈다. 1위 소련(금 55)에는 뒤졌으나 3위 미국(금 36, 은 31, 동 27)을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2위를 기록했다. 같은 대회에서 서독(금 11, 은 14, 동 15)도 5위에 오르며 게르만 민족의 저력을 과시했다. 통일 이후 첫 올림픽인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독일은 옛 소련, 미국에 이은 3위를 차지했다. 세계 3대 스포츠 강국 지위를 확실히 굳힌 순간이었다.

 

분단 시절 동독 체육의 강세는 다분히 ‘체제 경쟁’과 관계가 깊다. 자본주의 서독에 맞서 공산주의 동독의 우월성을 강조하려고 스포츠를 활용한 것이다. 올림픽,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국가를 대표해 뛸 엘리트 체육인 양성에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쏟아부었다. 이는 서독도 마찬가지였다. 냉전이 끝나고 동서독이 통일된 뒤로는 달라졌다. 국가 주도의 스포츠 투자가 확 줄었다. 올림픽에서 거둔 성적이 이를 보여준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6위로 내려앉은 독일은 2021년 도쿄올림픽에선 프랑스 등에게도 밀리며 9위까지 처졌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던 북한이 7월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30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전날 평양에서 올림픽위원회 총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올림픽 등 주요 국제 경기들에서 우리 국가의 존엄과 위용을 높이 떨치고 온 나라에 체육 열기를 더욱 고조시킴으로써 국가 부흥의 새 시대를 힘차게 열어나가는 우리 인민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고무를 안겨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냉전 시절 동독을 보는 듯하다. 당시 스포츠에선 동독이 앞섰으나 통일은 결국 서독 주도로 이뤄졌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