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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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항상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

29일 개막한 2024 통영국제음악제 기자 간담회
다채로운 음악과 화려한 출연진 구성…김일구 명창의 판소리 ‘적벽가’도
“상주 작곡가로 최근 타계한 외트뵈시는 내게 ‘음악의 아버지’…추모하는 마음 담아”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과 우리(한국)의 위치는 다르잖아요. 우리(음악)의 미래는 유럽의 미래와 달라야 하기 때문에 (통영국제음악제는) 항상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거(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려고 합니다.”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2022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를 이끄는 진은숙 예술감독은 29일 경남 통영 통영국제음악당 강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음악제의 방향성을 이렇게 소개했다 

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이 올해 음악제 개막일인 29일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이날 개막한 2024 통영국제음악제는 ‘순간 속의 영원(Eternity in Moments)’을 주제로 다음 달 7일까지 열린다.

 

진 감독은 “(취임 후) 지난 2년간 음악제를 지켜 보며 먼 데서 음악제를 찾아오신 분들과 좋은 연주와 아름다운 음악을 공유하는 순간은 영원히 우리 마음 속에 남을 것이라 생각해 이런 주제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통영음악제는 올해도 어김없이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 만한 출연진과 작품들로 관객을 맞는다. 음악제 상주 연주자인 ‘프랑스 삼총사’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가 참여한다. 세계 정상급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클랑포룸 빈, 독일 고음악 전문 연주단체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홍콩 신포니에타, 밴쿠버 인터컬처럴 오케스트라 등이 공연한다.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 빈 필하모닉 수석 하피스트 아넬레인 레나르츠, 카운터테너 필리프 자루스키 등 쟁쟁한 음악가들이 무대에 선다.

 

독특한 무대도 만날 수 있다. 세계 초연하는 작곡가 사이먼 제임스 필립스의 신작 ‘스레드(THREAD)’는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면 3차원 영상이 실시간 상호작용하는 공연이다. 베를린필하모닉 수석 베이시스트 매슈 맥도널드의 연주와 사운드·비주얼 아티스트 다쓰루 아라이의 3D 맵핑(입체 투사 영상)이 상호작용하는 융복합 무대로 이번이 세계 초연이다. 

 

클래식 음악제에서는 보기 드문 판소리 공연도 열린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인 김일구(84) 명창이 박봉술제 ‘적벽가’의 주요 눈대목을 들려준다. 진 감독은 “욕심 같아서는 한국 전통음악 공연도 많이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사정이라 안타까울 뿐”이라며 “개인적으로 우리 전통음악 중 가장 뛰어난 장르라고 생각하는 판소리를 선택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피아니스트이자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의 상주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나래솔(33)의 공연과 강연도 기대를 모은다. 진 감독은 “짧은 기간이지만 가능한 다양한 것을 청중들에게 선보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2024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음악제 상주 음악가인 세계적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가 스타니슬라프 코차놉스키가 지휘하는 통영음악제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이번 음악제에선 특히 상주 작곡가였으나 최근 80세를 일기로 타계해 함께하지 못한 헝가리 작곡가 페테르 외트뵈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의뢰한 ‘시크릿 키스’(2018년 작곡)와 ‘오로라’(2019)를 포함해 모두 다섯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당초 ‘시크릿 키스’와 ‘오로라’는 2020년 음악제에서 세계 초연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선보이게 됐다.

 

진 감독은 “음악제 기간 내내 지병으로 안타깝게 사망한 외트뵈시를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며 “저에게는 음악의 아버지 같은 분이다. 20여년 전에 제 작품의 초연을 해주셨고, 인간적으로도 따뜻한 정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음악제 구상을 위해 2022년 찾아간 부다페스트 자택에서 저녁을 먹을 때 자기 부인에게 ‘통영에 가게 됐다’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고 자랑하셨다”며 “농담으로 ‘그때까지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지병이 악화해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진 감독은 통영음악제가 초연 작품 등 낯선 레퍼토리(연주 목록)가 많다 보니 청중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대중성에만 포커스를 맞춰서는 절대 안 된다. 뭐든 처음에는 인기가 있을 수 없고, 하다 보면 청중들이 따라오게 돼 있다”며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즐기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걸 선보이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음악제에서는 젊은 한국 음악가들의 무대도 만나볼 수 있다. 지난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정규빈(27), 티보르 버르거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김서현(16)이 듀오 공연을 하며, 통영국제음악재단이 ‘TIMF아카데미’를 통해 발굴한 작곡가 이한의 위촉곡 ‘우리 주크박스가 망가졌어요’도 세계 초연한다. 진 감독은 “음악제뿐만 아니라 아카데미를 통해 젊은 연주자를 육성하고, 젊은 작곡가에게 리허설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통영=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