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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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2차전 히로인] 직선 코스 공격도 때리고 리시브 효율 35%↑, 현대건설 정지윤이 진화했다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의 6년차 선수인 정지윤은 프로 커리어의 앞의 3년과 뒤의 3년의 포지션이 다르다. 입단 초기만 해도 미들 블로커로 뛰었던 정지윤은 강성형 감독이 부임한 2021~2022시즌부터는 아웃사이드 히터로 전향했다.

아웃사이드 히터의 제1의 임무는 리시브. 미들 블로커로 뛰다 포지션을 전향했기에 정지윤은 다른 정상급 아웃사이드 히터들에 비해 리시브는 약한 편이다. 그럼에도 그를 아웃사이드 히터로 뛰게 하는 것은 약한 리시브 능력을 상쇄하게 하는 점프력과 체공력을 앞세운 공격력 때문이다. 제대로 리시브 되어 올라온 공을 코트를 쪼갤 듯한 파워로 크로스 코스로 때려내는 공격이 정지윤의 트레이드 마크다.

 

다만 공격에서도 약점은 분명한 선수다. 직선 코스를 거의 때리지 못했다. 때리러 올라가기 전부터 크로스 코스로 때릴 것이 보일 정도로 공격 코스가 한정적이다. 정지윤을 상대하는 팀들은 블로킹을 올라갈 때 아예 직선 코스는 비우고 반크로스와 크로스 코스로 올라갈 정도다. 그렇다 보니 다른 공격수들에 비해 이른바 ‘벽치기’가 자주 나오는 게 정지윤이다.

 

장점과 한계가 명확하다 보니 6년차를 맞이한 2023~2024시즌, 정지윤의 성장세를 정체됐다. 물론 비 시즌 동안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을 시작으로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쉴 새 없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느라 체력적 부담이 컸다고는 해도, 공격은 물론 리시브까지 모든 지표가 5년차였던 2022~2023시즌에 비해 뚝 떨어졌다.

 

정규리그 막판 위파위 시통(태국, 등록명 위파위)이 어깨부상을 호소하고, 정지윤의 부진이 겹치면서 현대건설은 아웃사이드 히터진의 공격 생산력이 크게 떨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승점 1 차이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강성형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의 성패를 가름할 요소로 아웃사이드 히터진의 활역 여부를 꼽을 정도로 리그 막판 보여준 정지윤의 모습은 기대 이하였다.

지난 28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정지윤의 활약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현대건설에서 가장 많은 34개의 서브를 받았지만, 세터 머리 위로 정확하게 연결한 것은 단 9개에 그쳤고, 2개는 서브 에이스를 허용하면서 리시브 효율은 20.59%에 그쳤다. 공격에서도 한계가 명확했다. 크로스 코스만 고집하는 그의 한계 때문에 19번 공격 시도해 성공한 것은 7개에 불과했다. 블로킹으로 3개를 차단당하고, 공격 범실도 3개. 공격 성공률은 36.84%였지만, 공격 효율은 5.26% 뚝 떨어졌다. 공격과 리시브가 모두 흔들리니 5세트엔 선발 출장도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리시브 능력이 더 나은 고예림이 5세트 선발로 투입됐다. 모마가 팀 공격의 51.53%를 책임지며 37점을 올리는 ‘원맨쇼’ 덕에 현대건설은 1,2세트를 내주고도 내리 세 세트를 따내는 3-2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패했다면 그 원흉 중 하나는 정지윤이었다.

 

그랬던 정지윤이 이틀 뒤인 30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챔프전 2차전엔 확 달라져 돌아왔다. 먼저 리시브 능력부터 크게 개선됐다. 여전히 정지윤은 흥국생명 서버들의 제1의 타겟이었다. 매세트 후위 세 자리를 고민지와 교체되어 소화하지 않음에도 팀에서 가장 많은 30개의 리시브를 받았다. 2차전에선 서브 득점은 하나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11개를 정확히 머리 위로 올렸다. 리시브 효율은 36.67%로, 리베로 김연견(26.09%)는 물론 위파위(29.63%)보다도 정지윤의 리시브가 더 나았다.

리시브가 잘 풀리자 정지윤의 장점인 공격도 잘 풀렸다. 26개를 때려 14개를 성공시켰다. 성공률은 53.85%에 달했다. 블로킹은 단 1개도 당하지 않았고, 공격 범실도 단 1개에 불과해 공격 효율도 50%였다. 그야말로 만점 활약이었다. 정지윤이 공격에서 제몫을 해주다 보니 이날은 모마도 공격부담을 덜 수 있었다. 2차전에서 모마의 공격 점유율은 38.71%로 1차전 비해 10% 이상 떨어졌다. 그만큼 클러치 상황에서 더 힘을 낼 수 있었고, 모마는 승부를 가른 5세트에 66.67%의 높은 공격 성공률로 현대건설의 3-2 승리를 이끌 수 있었다.

 

블로킹 1개 포함 15점을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끈 정지윤은 모마와 함께 수훈선수로 선정되어 인터뷰실을 찾았다. 정지윤은 “득점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경기에 임했다. 제가 뭘 해내겠다는 것보다는 리시브에서 조금 더 잘 받아주자는 마음으로 했다. 공격은 제게 올라왔을 때 득점을 내주면 다른 팀 동료들이 편하게 갈 수 있으니 하나씩만 잘 해내자는 마음이었다. 내가 할 것만 잘 해주는 마음으로 했던 게 잘 풀렸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지윤의 이날 활약이 더욱 고무적인 것은 크로스 코스 일변도에서 벗어나 직선 코스로도 때리면서 상대 블로커들을 교란시켰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묻자 정지윤은 “흥국생명 블로커들이 제 공격을 막으려고 뜰 때 직선 코스를 완전히 비우고 뜨더라. 평소에 직선 코스를 때리려고 연습을 많이 했다. 연습한 대로 잘 된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리시브도 이제는 자신에게 많이 온다는 것을 알고 초탈한 모습이었다. 정지윤은 “어쨌든 저한테 많이 올 것을 알고 있다. 제가 버텨야만 팀이 이길 수 있으니 그냥 버티자라는 마음으로 받아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제 후위 세자리에 들어와주는 (고)민지 언니가 잘 해줘서 부담을 좀 덜 수 있어 고맙다”고 덧붙였다.

1차전과 비교해 달라졌던 점을 묻자 정지윤은 “1차전을 승리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평가했을 땐 초반의 좋은 리듬이 저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처졌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해야하는 것에만 집중하며 차분함과 평온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게 달랐던 것 같다”고 답했다. 정지윤의 맹활약 덕에 공격 부담을 덜어낸 모마는 “(정)지윤의 활약은 매우 매우 도움됐고, 매우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1차전보다 2차전에 더 이기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 이기고자 하는 정신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동료를 치켜세웠다.

3차전은 흥국생명의 홈인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다. V리그 팀들 중에 가장 강력한 팬덤을 자랑하는 흥국생명의 열광적인 응원 열기는 삼산에서는 더욱 커진다. 이날도 현대건설의 홈인 수원에서 열렸음에도 응원 열기는 비슷했을 정도로 흥국생명 팬들의 응원은 뜨거웠다. 인천에서 경기하게 되면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정지윤은 “흥국생명 팬분들의 응원이 크다는 것을 잘 안다. 경기할 때도 잘 들린다. 그래서 저희끼리의 사인이 잘 안들릴 때도 있다. 그래도 신경 안 쓰고 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옆에서 듣던 모마도 “좀 시끄럽긴 한데, 그런 분위기 좋아한다. 같이 싸우는 것 같아서, 파이팅이 더 생긴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