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계와 대화하겠다고 밝힌지 1주일이 지났지만, 대화가 시작할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의정(醫政)간 대화체 구성이 요원한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증원 규모와 방식에 대해 엇박자를 내고 있고 의사들은 통일된 목소리를 낼 대화 창구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31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1주일 전인 지난 24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단을 만난 뒤, 정부는 대화 추진 방침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에 대해 '유연한 처리'를 모색해달라면서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의사 사이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지만, 예상과 달리 의제가 마련되지도, 대화할 협의체가 구성되지도 않았다.
대화를 시작도 못한 것은 '2천명 증원'이라는 핵심 의제에 대해 양측의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2천명 증원'을 양보할 생각이 없음에도, '2천명 증원 백지화'를 고집하는 의료계를 상대로 서둘러 대화를 언급했다가 '말로만 대화'가 돼버린 셈이다.
대화를 언급한 다음 날인 지난 25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시장에서 물건값 깎듯이 흥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 29일 "5천만 국민을 뒤로하고 특정 직역에 굴복하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는 대화 언급 이후 지난 26일 교육·의료계 인사들을 만났지만 그동안 목소리를 활발하게 내 온 의대교수 단체들이나 전공의들은 참여하지 않았고, 같은 날 의료계를 향해 내년도 의료예산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의사들은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총선을 앞두고 여당 내에서 '2천명 증원'에 대한 신중론이 제기되면서 정부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은 증원 규모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27일 정부가 내년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리면 '의료 파탄'이 일어날 것이라며 증원 규모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촉구했고, 29일도 YTN 라디오에서 "2천명 증원을 성역으로 남기면서 대화하자고 하면 진정성이 없다고 다들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28일 "2천명 숫자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은 국민들 눈에 오기로밖에 안 보인다"고 했고, 권영세 의원은 29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의 '2천명 증원안'에 대해 "유연성을 보이는 것이 좀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물론 한동훈 위원장과 만난 전의교협, 전국의대교수비대위가 정부의 대화 요구에 침묵하는 가운데, 개원의 중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강경파 인사가 차기 회장에 당선돼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저출생을 고려해 의대 정원을 500∼1천명 줄여야 한다고 밝혀온 임현택 당선자는 "면허정지나 민·형사 소송 등 전공의·의대생·교수들 중 한 명이라도 다치는 시점에 총파업을 시작할 것"(26일), "의사 출신 개혁신당 비례후보를 반드시 당선시킬 것이며, 의협 손에 국회 20∼30석 당락이 결정될 만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27일) 등의 강경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그는 대화의 조건과 관련해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차관 파면, 의대 증원에 관여한 안상훈 전 사회수석 공천 취소가 기본이고 대통령 사과가 동반돼야 한다"고 밝혀 의정 간 대화가 전보다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정부와 의사들이 대화에 나서지 않고 '마이웨이'로 내달리는 가운데 환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가 함께하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25일 성명에서 "의료계와 정부는 정말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어 나가는 상황이 되어서야 이 비상식적인 사태의 종지부를 찍을 셈이냐"라고 반문하며 "우리의 목숨은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희생되어도 좋을 하찮은 목숨이 아니다"라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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