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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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생후 33개월 유아 병상 없어 숨진 현실 의사들은 직시하라

그제 충북 보은에서 생후 33개월 여아가 물에 빠져 숨진 사고가 있었다. 정황상 신속히 대형병원에 보내져 수술을 받았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기에 안타깝기만 하다. 지방의 열악한 의료 현실, 특히 소아 중환자 치료의 어려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를 개혁하자고 정부가 대화를 제안했는데 의료계가 꿈쩍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 여아는 주택 옆 1m 깊이 도랑에 빠졌다가 아버지에 의해 구조됐다. 인근 병원에 옮겨졌을 때 심정지 상태였으나 응급 치료를 받고 맥박이 돌아왔다. 긴급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병원 측이 충북도내 상급종합병원들에 이송을 타진했으나 거부당했다. 인근 세종, 대전, 심지어 경기도 대형병원에도 연락했으나 ‘소아 중환자실 병상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다시 심정지 상태가 된 여아는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곁에서 손도 못 쓰고 아이를 잃은 부모 심정이 어떻겠는가. 대한민국 의료 체계에 대한 원망이 뼈에 사무쳤을 법하다.

국내 대형병원들의 소아 중환자실 파행 운영은 심각하다.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등 수도권의 사정이라고 나을 게 없다. 매년 2만명 넘는 소아 중환자가 발생하지만 병상이 부족해 그중 55%는 성인 중환자실을 이용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형병원들은 소아 중환자실 확대에 난색을 표한다. 수가가 너무 낮다는 이유에서다. 대형병원들은 현 수가로는 소아 중환자 병상을 늘리면 늘릴수록 적자만 쌓여 투자를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최근 정부가 소아를 대상으로 한 고위험·고난도 수술 등 수가를 최대 10배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사정이 나아지길 기대할 뿐이다.

우리 의료 서비스의 질 개선을 위해선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수가 체계 재조정을 비롯해 대책을 모색하는 게 시급하다. 하지만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방침 철회가 먼저”라며 정부의 대화 제의를 아예 모른 척만 한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오만에 시간은 의사 편이라고 생각해서인가.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차기 회장은 “총선에서 20~30석 당락을 결정할 전략을 가지고 있다”면서 정치 투쟁에만 골몰하니 환자들이 안중에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울부짖음이 들린다면 의사들은 당장 의료 현장으로 돌아가고 의료 발전을 위한 정부와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