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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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년 역사 유성호텔 마지막 체크아웃’… 고층 호텔·주상복합건물로 재탄생

“100년 넘게 동네를 지켜온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심정이네요.”

 

31일 오후 대전 유성호텔. 호텔 대온천탕을 가족과 함께 찾은 황준석(45·대전 지족동)씨는 “오늘이 마지막 운영이라고 해서 가족과 왔는데,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 같은 친구가 떠나는 듯한 서운한 감정이 몰려온다”고 했다. 이날은 109년 역사의 유성호텔이 마지막 체크아웃하는 날이다. 시설 노후화와 경영난 등으로 유성호텔은 109년만에 셔터를 내린다.

 

유성호텔 전경. 유성호텔 제공

“어릴적 부모님 손을 잡고 호텔에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는 황씨는 발걸음을 떼기 못내 아쉬운 듯 호텔 곳곳을 둘러봤다. 

 

1915년 자연 용출 온천이 개발되면서 대전 유성구에 개관한 유성호텔은 109년간 지역 대표 향토호텔로 자리 잡았다. 

 

현재 190개의 객실과 연회장, 수영장, 온천수가 나오는 온천탕을 갖추고 있다. 전국적 명소로 유명세를 얻으면서 대전시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1970년대에는 신혼부부들은 물론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해방 후 미국에서 돌아와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유성호텔에 머무르기도 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자주 들렀다.

 

최초의 유성온천호텔(1918년). 연합뉴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선수촌호텔로, 1993년에는 대전엑스포 본부 호텔로 사용되며 많은 역사의 순간들이 머물다 갔다.

 

196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후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노후화로 운영·관리상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시대가 변하고 경제 불황 등으로 발길은 줄었다. 

 

잇따른 유성 관광호텔들의 업태 변경은 유성관광특구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유성에서 세 번째로 온천공을 뚫은 홍인호텔 자리엔 2015년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다. 리베라호텔은 2017년 폐업 후 49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2018년 문 닫은 아드리아 호텔 자리엔 생활형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라온컨벤션 호텔은 오피스텔로, JH레전드 호텔은 무기한 휴업 후 생활형 숙박시설을 추진 중이다. 2019년 문을 연 라마다호텔은 4년 만인 지난해 초 최종 매각됐다. 

 

아쉬움 때문인지 공식 영업 종료일인 이날 오후까지도 시민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1966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유성관광호텔. 연합뉴스 

유성호텔 역시 아쉬운 마음을 담아 방문한 시민들에게 추억을 선사했다. 

 

호텔 측은 체크인 시 100여년 전 유성호텔이 그려진 목욕 바가지와 단지 모양의 바나나우유, 초코파이를 제공하며 호응을 얻었다. 호텔 입구에 마련된 포토존 ‘Since 1915’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시민들로 붐볐다. 

 

김지민(24)씨는 “유성호텔의 마지막을 기념하고 싶어서 친구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었다”며 “호텔 안을 들어가봤는데 엔티크한 인테리어 등이 살아온 세월을 보여주더라. 고풍스러웠다”고 했다.

 

유성호텔은 철거된 뒤 호텔과 거주 및 상업시설 등을 갖춘 24층 규모 주상복합건물로 거듭난다.  

 

새로운 관광호텔 등을 짓기 위해 2022년부터 재개발 계획에 들어간 호텔 측은 주변 부지 일부를 매입했다. 현 호텔 부지와 주변에 새롭게 건물을 지어 올릴 예정이다.

 

호텔이 시에 낸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호텔 측은 213개 객실을 보유한 호텔 1개동과 536세대의 주상복합건물 2개동을 현 호텔 부지와 근처에 새로 지을 계획이다. 건물은 24층 규모로 착공 예정일은 내년 7월로 예상된다. 

 

호텔 직원들은 최근 사직서를 모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사직하게 된 직원들을 위한 지원 계획 등을 마련하며 영업 종료에 대해 서로 원만하게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시는 유성호텔의 역사성과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확보하고 기록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