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을 꿈꾸던 한 고등학생이 죽었다. 10년 전 4월 어느 날,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떠나다가 새까만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디자이너를 꿈꾸던 학생도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해 가수를 꿈꾸던 아이도 돌아오지 못했다. 검도를 잘하던 학생도, 시 쓰기를 좋아하던 아이도 죽었다.
10년 전 그날, 학생들이 죽은 건 어른들의 책임이다. 배가 기우뚱했을 때 세월호 선장이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만 하지 않았더라면, 돈에 눈이 멀어 화물을 무리하게 선내에 적재하지 않았더라면, ‘전원 구조’라는 정부의 오보가 아니었다면, 해경의 구조 능력이 완벽했더라면 아이들은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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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위기 상황에서 추악한 민낯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0년 전 그날 추악한 어른들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기자들은 고작 원고지 4매의 기사를 위해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한 점 헤아리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도려냈다. 비록 조심하려고 노력했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을 도려냈을 것이다.
수많은 아이의 꿈을 앗아 간 참사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외면해 온 정치인들, 아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던 어른들. 정치인뿐만 아니다. 그저 아이들을 추모하고 싶었던 마음인데 정치적인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서 비난과 냉소를 보내던 수많은 이들. 지켜 주지도 못하고 남 탓하기 바쁜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던 10년 전 그날 자정이 넘은 시간. 진도 팽목항에 밀려오던 새까만 파도를 바라보며 통곡을 하던 한 학생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지켜 주지도 못했고, 차가운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했다. 하다못해 그 어머니에게 따뜻한 손길조차 내밀지도 못했다.
지금도 악몽을 꾼다. 꿈에서 나는 10년 전 그날 세월호 안에 있다. 배가 기우뚱하자 나는 선내 방송실로 달려간다. 이 배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 거라 알고 있기에, 모두 갑판으로 대피하라고 알린다. 어느새 출동한 해경으로부터 모두가 구조된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다. 베갯잇은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눈물로 젖어 있다. 그 꿈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이기에 악몽이다.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서 스러졌던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내가 사회 초년 때 진도 팽목항을 찾던 스물여덟 살이 됐을 것이다. 그들도 저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방송인을 꿈꾸던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어쩌면 기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나와 비교도 되지 않는 훌륭한 기자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곧 나다.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어른으로서 그들의 꿈을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이다. 기자로서 사회에 나왔을 때 누군가는 영광이라고도 했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이제 그런 것은 없다. 그저 그날 죽어 간 아이들에 대한 속죄로 글 기둥 하나 붙잡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에 다시 휘말리지 않도록 한 명의 어른으로서 오늘도 아무도 모를 참회의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