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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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교육부·자퇴생은 여가부 담당… ‘지원 사각’ 우려 [심층기획-파편화된 정책에 학교 밖 청소년 소외]

정부 “지원 강화 위한 이원화” 불구
부처간 장벽에 막혀 각종 정책 한계
자퇴 후 지원 끊기는 등 고립 심화
학교밖청소년 공식 통계조차 없어

자퇴 전 정보 지원센터 연계 법 추진
“본인 원치 않으면 개입 불가능 한계”
정부, 통계 등 부처간 협조 강화 방침
“협조론 한계… 체계 일원화를” 목소리

A씨의 딸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지난해 학교를 그만뒀다. 중학교에서부터 따돌림으로 교우 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아이는 고등학교 생활도 힘들어했다. 긴 고민 끝에 학교에 자퇴서를 내던 날, A씨 모녀는 서로를 껴안고 울었다. ‘세상에 둘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A씨는 “그냥 뒀다간 아이의 마음이 더 다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그만두도록 했다”며 “아이 스스로 자퇴서를 냈지만 사실상 떠밀려 나온 것”이라고 회상했다.

지난 2월 경남 창녕군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학교밖 청소년들이 직업체험의 일환으로 라탄 공예 실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창녕군 제공

학교를 그만둘 때 느꼈던 외로움과 고립감은 쉽사리 떨쳐지지 않았다. 자퇴 후 아이는 몇 달간 밖에 나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다. 교육청의 청소년 동아리 프로그램 홍보물을 본 A씨가 어렵게 아이를 설득해 가입을 신청했지만, 교육청에서 거절당했다. ‘학생’만 지원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청소년 지원센터 도움을 받아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으나 학교 밖 생활은 쉽지 않다.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 주는 A씨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A씨는 “학교를 나올 때 이제부턴 우리끼리 알아서 해야 한다고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어렵다. 학교를 나오니 교육 정보나 지원이 끊기는 느낌”이라며 “아이가 마음을 추스르면 학교에 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는 새 시간이 흘렀다”고 답답해했다.

 

매년 5만여명의 청소년이 학교를 떠난다. 학생이라 불리던 아이들은 학교를 나가는 순간 ‘학교 밖 청소년’으로 분류되고, 지원 부처는 교육부에서 여성가족부로 넘어간다. 정부는 학교를 떠난 아이들도 두텁게 지원한다는 취지에서 지원 부처를 이원화했지만, 오히려 두 부처 사이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정보 공유 안 되고 사각지대 발생

 

1일 교육부에 따르면 2022학년도(2022년 3월∼2023년 2월) 학업 중단 초·중·고생은 5만2981명으로 전체 학생(527만5054명)의 1%였다. 고등학생만 따로 떼면 1.9%로 더 높다. 학업 중단 청소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대면 수업이 줄고 출국이 제한됐던 2020·2021학년도를 제외하고 최근 몇 년 사이 계속 연간 5만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해외 유학 또는 질병 등의 사유로 학교를 그만둔 경우도 포함돼 정부의 교육 지원 등이 필요한 실질적인 학교 밖 청소년 규모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세부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주민등록 인구와 내국인 출국 통계 등을 고려해 학교 밖 청소년을 17만명가량으로 추산하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된 통계가 없으니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통계조차 없는 상황은 이원화된 지원 구조에서 기인한다. 정부는 학교에 소속된 학생은 교육부가, 학교 밖 청소년과 위기 청소년 지원은 여가부가 맡도록 하고 있다. 청소년 지원을 보다 강화하고 정책에서 소외된 이들이 없도록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두 부처 모두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과 부처 간 장벽이 생기면서 도리어 지원에 구멍이 뚫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교육부의 청소년 지원 정책에 학교 밖 청소년들은 배제되는 식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 밖 청소년이 이용하는 지원센터가 지방자치단체·여가부 소관이어서 학교와 기관 사이에 원활한 정보 공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학교폭력·따돌림으로 오랜 기간 상담을 받던 고교생이 학교를 그만둬도 현재는 본인이 원치 않으면 청소년 지원 기관에 해당 청소년 정보가 넘어가지 않는다. 그 청소년이 기관을 찾아가지 않으면 지역 사회에 고립되어도 아무도 알 수 없는 셈이다. 기관을 찾아가더라도, 학적 대조가 불가능해 그 청소년이 과거 어떤 학생이었는지 기관에선 알지 못한다. 한 청소년 지원센터 관계자는 “학교를 떠난 아이 중 정서 위기 청소년이 많은데 학교에서 나가는 순간 각종 지원이 끊어진다”며 “기관을 찾아가지 않고 방황하는 아이도 많다. 심리 상태가 나빠져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정책 담당 일원화 목소리 커

 

교육부와 여가부는 올해 9월 이후에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입장이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다. 개정안에는 학업을 멈춘 청소년의 정보가 사전 동의 없이 지원센터로 넘어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추후 해당 청소년에게 동의 여부를 확인하고, 당사자가 정보 처리 정지를 요청하거나 6개월 이내에 동의를 하지 않으면 정보를 파기해야 한다. 청소년 지원센터 관계자는 “정보가 넘어오게 된다면 현재보다 진전된 정책이라 할 수 있지만 본인이 원치 않으면 더 개입할 수 없는 것은 한계”라며 “미성년자인 만큼 충동적으로 정보 파기를 요청할 수 있는데, 파기된 후에는 정책 대상에서 이름이 사라지게 된다. 고교 졸업 나이까지는 국가가 들여다볼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교육부와 여가부, 법무부(수감 청소년·해외 출국 청소년) 등 여러 부처에 흩어진 청소년 통계를 모아 학령기를 포괄하는 만 6∼17세 아동·청소년 기본통계를 구축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현재 통계 구축을 논의 중인 단계여서 결과가 당장 나오기는 어렵다. 교육부는 내년쯤 통계가 발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부처 간 협조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담당 부처가 일원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부처가 일원화되면 통계 구축, 정책 추진 등의 절차가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 교육계에선 정부가 여가부 폐지 기조를 가지고 있는 만큼 향후 청소년 업무는 교육부로 넘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기의 한 상담교사는 “학교에 적응 못 한 아이들은 교육 당국이 더 지원해야 하는데도 현재는 학교에서 나가면 교육 당국 눈에서 벗어나는 구조”라며 “꼭 다시 학교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귀 지원이 소홀한 것은 분명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담당 부처가 두 곳이면 서로 떠넘기는 구도가 되기 쉽다”며 “교육부가 학령기 청소년을 전반적으로 담당하고 여가부가 위기 청소년을 추가 지원하는 식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유나·조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