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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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2000명 증원’ 당위성 역설…“열린 대화” 진정성 호소 [의대 증원 갈등]

51분간 의료개혁 대국민 담화

“국민 불편 조속히 해소 못해 송구”
의료 공백 사태 불거진 후 첫 입장

의료계의 ‘단계적 증원’ 요구 일축
규모 조정 가능성 시사 ‘강온전략’

한동훈 “다수 국민 조속 해결 원해”

윤석열 대통령의 1일 의료개혁 대국민 담화는 의대증원 규모 조정 가능성을 시사하며 의료계와의 대화 단초를 마련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직후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KBS에 출연해 “2000명 숫자가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다”라며 한층 더 전향적인 입장을 내놨다. 의료계와 정부가 강대강으로 대치해온 ‘2000명 규모’를 두고 정부가 ‘의료계 통일안’을 전제로 먼저 조정 가능성을 밝힘에 따라 양측이 대치를 풀고 협상에 나설지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집단행동에 나선 의료계의 입장 변화에 따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아주 일부 조정하거나 2026학년도 입시에서부터 의료계 입장을 반영하려는 취지가 이번 담화에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선 채 51분간 1만4000여자 분량의 대국민 담화를 직접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특정 현안에 대해 담화를 발표한 건 이태원 참사 직후인 2022년 10월30일,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가 불발된 2023년 11월29일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합리적 방안 가져오면 숫자 논의 가능”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의료계를 향해 “정부가 충분히 검토한 정당한 정책을 절차에 맞춰 진행하고 있는데 근거도 없이 힘의 논리로 중단하거나 멈출 수는 없다”며 “불법 집단행동을 즉각 중단하고 합리적 제안과 근거를 가져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계가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며 국민, 의료계, 정부가 참여하는 의료개혁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대통령실은 지금까지 정부가 2025학년도 입시에 적용할 의대 입학 정원 배정을 이미 끝낸 만큼 ‘2000명 증원 규모’에 대해 타협 불가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의료계의 집단 반발이 계속 이어지고, 총선 코앞에서 여권의 부담으로 다가오자 대화 여부에 따라 일부 조정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타당·합리적 방안 제시’라는 조건을 내건 점에서 정부가 제시한 기존 숫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처럼 오히려 의사 정원 감축을 주장할 경우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구 고령화와 의료 수요 폭발이라는 사회적 변화를 고려해 의료계가 합리적·상식적 수준에서 숫자 조정을 요구할 경우 일부 고려를 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또 의료계가 주장하는 단계적 증원은 불가능하고, 매년 똑같은 숫자로 균등하게 늘려가겠다는 입장도 확고하다.

 

윤 대통령은 “단계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려면 마지막에는 초반보다 훨씬 큰 규모로 늘려야 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갈등을 매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의대 지망생의 예측 가능성과 또 연도별 지망생들 간의 공정성을 위해서도 증원 목표를 산술평균한 인원으로 매년 증원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번 달 출범시킬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에 의료계가 참여하지 않으면 교육부의 입시 일정상 내년도 의대 인원은 정부안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병원 노동자들, 사회적 대화 촉구 1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서울지역 전공의 수련병원 현장 노동조합 대표자 합동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한 환자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노조원들은 “수백 명의 보건의료노동자가 무급휴가로 내몰리며 일방적인 임금 삭감을 강요받고 있다”며 전공의 즉각 복귀, 환자와 병원 노동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등을 촉구했다. 뉴스1

◆강온 전략 구사, 2000명 당위성 강조

 

윤 대통령의 담화는 지난달 31일 밤 확정됐다. 이에 앞서 내부 논의 과정에서 숫자에 대한 전향적 입장 변화가 아닌 만큼 담화 발표에 반대하는 의견도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윤 대통령을 향해 압박을 가하는 만큼 대통령의 진정성과 개혁의 불가피성을 호소하며 정책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이번 담화의 대부분은 의료개혁 당위성 등 기존 입장을 더 세세히 설명하는 데 할애됐지만 ‘국민에 대한 송구’, ‘숫자 조정 가능성’, ‘사회적 협의체 구성’에 진심을 담았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국민들의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늘 송구한 마음”이라며 지난 2월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로 의정갈등 사태가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저와 정부는 더욱 자세를 낮추고 우리 사회의 약자와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다”고 호소했다.

 

의료계를 향해선 강온 전략을 구사하며 “20년 후에 의사가 2만명이 더 늘어서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사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가 장래 수입 감소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결코 그렇지 않다”, “정부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을 결정했다”, “27년 동안 반복한 실수를 또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다” 등 강경 어조로 설득·압박을 했다. 그러면서 “병원을 떠나있는 전공의 여러분, 제가 의료개혁을 통해 제대로 된 의료시스템을 만들겠다”, “우리나라의 의학과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로 만들 수 있도록 막대한 투자를 하겠다. 집단행동을 하겠다면 증원을 반대하면서 할 게 아니라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해달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부산 북구 유세에서 “오늘 의료개혁에 있어 정부도 2000명의 숫자를 고수하지 않고 대화할 거라는 입장 밝힌 바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남구 유세에선 “다수 국민은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고 공감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조속히 해결되는 것도 바란다”고 했다.


이현미·곽은산·구윤모·김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