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츠베덴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서 축구와 클래식 음악은 완전히 다른 세계이지만 상당히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지휘자가 각 연주자의 가능성과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축구 감독과 역할이 비슷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연락하게 됐어요.”(거스 히딩크 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히딩크는 저의 마에스트로여서 ‘마에스트로 히딩크’라고 불러요. 한국뿐 아니라 네덜란드, 전 세계에서 전설인 분이 연락주셨을 때 매우 기뻤고, 서로 인생의 가치에 공감대가 많아 돈독한 우정을 쌓게 됐습니다. 둘 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의 중요성을 알지요. 또 선수들과 연주자들이 경기장과 공연장에서 진정 경기와 연주를 즐길 수 있도록 꾸준하고 혹독한 훈련과 연습을 시키는 것도 비슷합니다.”(야프 판 츠베덴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1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시향의 ‘히딩크 홍보대사 위촉식 및 기자간담회’에서 같은 네덜란드 출신인 히딩크 전 감독과 츠베덴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소개한 둘의 인연이다.
서울시향 홍보대사는 무보수 명예직으로 서울시향이 자체 홍보대사를 위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히딩크 전 감독은 올해부터 5년간 서울시향을 이끄는 츠베덴 음악감독과 함께 서울시향을 전 세계에 알리며 시향의 ‘약자와의 동행’ 사업 등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홍보활동을 할 예정이다.
이날 위촉장을 수여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계적 축구 명장인 히딩크 전 감독을 서울시향 첫 번째 홍보대사로 위촉해 매우 기쁘다. (서울시는)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명예시민으로 모셨는데 다시 인연 맺게 됐다”며 “서울시향은 츠베덴 감독이 지난 1월 정식 취임하면서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스포츠와 클래식을 대표하는 두 명장이 함께해서 서울시향의 도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둘이 만나면 축구와 음악 얘기만 하느냐’는 질문에 히딩크 전 감독은 “서로 자연스럽게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지만 침묵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며 “둘이서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대화하지 않아도 매우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라고 말했다. 츠베덴 음악감독도 “우정이란 함께 있는 것 그 자체가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며 “감독님이 요리를 정말 잘 한다. 댁에 가면 직접 요리를 해주는데 정말 엄청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웃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음악 취향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기본적으로 팝과 클래식 등 음악을 좋아한다”며 “클래식 음악은 무겁고 어려운 곡보다 이해할 수 있고 선율이 아름다움 곡을 즐겨 듣는 편”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축구를 즐기고 히딩크의 오랜 팬이었다고 한 츠베덴 음악감독은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7살 때 (고향 축구팀인) 아약스 팀 회원이 됐고, 지금까지 응원하고 있다”며 “히딩크가 아약스를 감독한 적이 없어서 슬프다”고 했다. 이어 “히딩크와의 우정이 탄탄하지만 응원하는 팀에 있어서 만큼은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며 “아약스가 나은지 (히딩크가 사령탑을 지낸) 아인트호벤이 나은 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웃음)”고 덧붙였다.
오케스트라와 축구의 공통점을 묻자 히딩크 전 감독은 “나는 축구만 조금 아는 정도라 축구와 클래식 모두를 잘 아는 츠베덴이 먼저 답변하는 게 낫다”며 마이크를 넘겼다.
츠베덴 음악감독은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팀으로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주자들이 자신의 악기 소리뿐 아니라 다른 연주자들의 소리를 듣는 건데 마치 축구팀이 경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오케스트라는 축구처럼 11명이 경기하는 게 아니라 많은 경우 100명까지도 모여연주를 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연주를 잘 듣고 이해할 때 자신의 연주를 더욱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연습할 때도 아주 작은 디테일(사소한 것)까지 다듬으려고 노력하지요. 이런 작은 디테일을 최대한 완성시켰을 때 아주 훌륭한 전체 그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축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오케스트라와 축구가 두 번째로 유사한 건 충분하게 훈련해야 즐겁게 경기하고 연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히딩크 전 감독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야 하는데, 츠베덴 감독님을 추천하는 게 어떨까 한다”며 농담을 던졌다. “완벽한 팀을 구성하도록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데 아주 전문가”라고 하면서다.
츠베덴 음악감독은 “안타깝지만 지금은 서울시향을 맡고 있어서 축구대표팀을 맡기가 어렵다(웃음)”며 “재능 있는 한국 선수들이 많은 만큼 이 선수들이 더욱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훌륭한 감독이 선임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얼마 전 아시안컵에서 졸전을 거듭하다 4강에서 머문 한국 축구 대표팀과 클린스만 전 감독의 경질 사태, 조직력을 해쳤던 선수들 간 불화 등 한국 축구의 현실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엔 “목요일(4일)에 예정된 서울시향이란 훌륭한 오케스트라 팀이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매우 기대하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물론 제가 한국 축구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오늘 이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다른 기회가 생기면 분명히 말하겠다. 대신 목요일에 서울시향의 경기를 즐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두 사람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을 지원하는 ‘파파게노 재단’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츠베덴이 부인과 함께 1997년에 설립한 이 재단은 네덜란드 내 전문 음악 치료사를 연결해 재택 음악치료를 제공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한다. 파파게노 하우스를 개소해 연구 센터를 두고 자폐 조기 진단·치료·음악 치료의 효과 분석을 하는 등 사회적 책임에도 앞장서고 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선수 시절 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특수학교에서 장애아들을 지도했다. 2007년에는 '거스히딩크재단'을 설립, 장애인·다문화가정·취약계층 어린이들이 축구를 통해 희망과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드림필드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