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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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북한이 총선 개입 시도”… 그런데 노동신문으로?

통일부가 4·10국회의원 총선거에 북한이 개입을 시도한다며 경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통일부는 2일 ‘북한의 우리 총선 개입 시도 관련 통일부 입장’이란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통일부는 1월 4일 입장문을 통해 북한이 우리에 대한 위협과 비방을 하며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는 것에 강력히 경고하고, 우리 총선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고 밝혔다. 

 

노동신문에 ‘미제와 괴뢰(한국)’을 비난하는 기사가 게재된 모습. 조선중앙TV·뉴시스

이어 “그러나 북한은 우리 선거 일정을 앞두고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의 관영매체를 통해 대통령을 모략·폄훼하며 국내 일각의 반정부 시위를 과장하여 보도하고 우리 사회 내 분열을 조장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의 이러한 시도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훼손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우리 정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현명한 우리 국민 어느 누구도 이에 현혹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강화되고 있는 북한의 이러한 불순한 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강력히 경고하며 북한발 가짜뉴스와 선전·선동이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한다”고 밝혔다.

 

◆북한 관영매체는 무엇?

 

통일부는 총선 개입 시도의 근거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 대남 비난 기사가 늘어났다는 점을 들었지만, 이 기사들은 우리 국민이 볼 수 없는 기사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의 관영통신사고 국내에서는 접속이 차단돼 있다. 노동신문 역시 북한 주민들이 보는 북한 대내용 매체로 북한 노동당 기관지다. 당 국가인 북한에서는 당의 방침을 전달하는 당원과 주민 교육용 신문이라 할 수 있다. 노동신문 반입은 물론 온라인 사이트를 통한 접속도 국내에서는 차단돼 있다.

 

통일부가 북한이 총선개입을 하고 있다며 2일 공개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기사 사례.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을 ‘윤○○’으로 고쳐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통일부 제공

두 매체와 조선중앙TV 등 북한 통신, 신문, 방송은 국내에선 보도를 목적으로 국내 언론사가 계약을 맺고 합법적으로 접한다. 정부와 대학 등 연구기관 등에서 허가 하에 ‘특수자료’로 취급해 별도의 규정을 갖고 열람케 하고 관리한다.

 

북한 내부용인 노동신문의 가장 마지막 면이자 ‘대남면’이라고도 불리는 6면에 실리는 남한뉴스나 국제뉴스는 보통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에 대한 부정적 뉴스나 적개심을 고취하는 내용이 많다. 남한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서방 여러 나라들에 대한 부정적 뉴스들도 게재된다. 외부세계를 일종의 ‘디스토피아’로 세뇌하려는 시도다.

 

이날도 노동신문 6면에 ‘도이췰란드(독일)의 실업 형편’을 싣고, ‘평화를 바라는 세계의 민심을 우롱하지 말라’는 기사에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최근 가자 지구 휴전 결의안을 채택할 때 미국이 기권한 소식을 전하며 미국을 비난했다.

 

노동신문을 볼 수 없거나 보기 극히 어려운 일반적인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북한 주민도 노동신문의 의도대로 교육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3만4000명이 넘는 탈북민이 국내로 왔고 북한 내부에 남한 드라마나 영화가 퍼져있다.

 

노동신문 온라인 사이트에서 2일치 노동신문 업로드돼 6면에 서방 국가들을 비난한 기사가 게재된 모습. 노동신문 온라인 사이트는 국내에서 접속이 차단된다. 우회경로로 편법 접속하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언론인, 전문가, 연구자들이 보도나 연구 목적으로 불편을 감수하고 불완전한 방법으로 접속하고 있고 조선중앙통신사 편법 접속한 자료화면은 보도를 위해 불가피하게 KBS 등 지상파 방송 뉴스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노동신문 온라인 사이트 캡처

◆노동신문 공개하려다 중단

 

권영세 장관이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초까지도 통일부는 사실상 영향력이 없는 노동신문을 일반 국민도 접하게 하려고 했다. 이른바 노동신문 개방 사업이다. 접근 제한을 해제해 일반 국민이 북한 실상을 알 수 있고, 연구 등 다양한 목적으로 노동신문이 이용됨에도 접근이 매우 불편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것이었다.

 

지난해 1월 KBS에 출연한 권영세 장관은 노동신문 개방 사업에 대해 “통일 플러스 센터라든지 통일부가 운영하는 그런 장소에 가면 소위 PDF 형식으로 디지털 방식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게 하겠다”며 “왜냐하면 우리 국민들이 성숙하셔서 북한 노동신문, 중앙언론이죠. 노동신문에서 어떤 선전문구로 가득 차 있더라도 선전의 벽을 넘어서서 북한의 실상을 꿰뚫어보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런 부분에서는 조금 더 개방적으로 나가는 게 필요하고 그런 식의 선제적인 개방이 나중에 북한에 (우리 매체를) 개방토록 요구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의 무기로 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권 장관과 인터뷰한 박장범 KBS앵커는 조선중앙TV의 뉴스 화면을 국내 방송사들이 자료화면으로 노출시키고 있는 사례를 들며 “또 북한 아나운서 특유의 억양때문에 코미디 소재로 활용되고도 있지 않습니까?”라며 북한 방송이 공개돼 오히려 희화화되고 있다는 언급을 했고, 권 장관은 “네. 그렇죠”라고 답했다. 노동신문 개방 사업은 2023년 통일부 연두업무보고에도 포함됐던 사업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지난해 김영호 장관이 취임한 뒤 장관 지시로 추진이 중단됐다. 당시 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사업 중단 이유를 묻는 질문에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평소 노동신문 1면 모습. 뉴스1은 정부 허가 하에 계약을 맺고 국내에 노동신문 콘텐츠를 독점 제공하는 통신사다. 뉴스1

◆“불순한 시도에 경고”

 

그외 북한은 그간 ‘우리민족끼리’나 ‘메아리’ 등 대외 선전·선동 목적으로 운영해온 매체들이 있었으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동족관계를 부정하고 교전국 관계로 남북관계를 선언한 1월부터는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은 1972년도에 7·4공동선언부터 상대방을 중상, 비난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상대방 내부문제 간섭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이후 여러차례 걸쳐서 유사한 합의를 해왔다”며 “이런 것은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고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는 것은 남북관계의 가장 최소한의 기본적인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끊임없이 대남비방과 우리사회 내부에 영향을 미치려는 불순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데 대해 분명히 경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북한 매체를 일반 국민이 접하지 못하는데 총선 개입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노동신문이 비록 대내매체이긴 하지만, 여러 경로통해서 우리 국민이 여전히 노동신문 보도 내용을 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