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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 대한석유협회장 “韓 수출 이끄는 정유산업, 경쟁력 강화 위해 세제 개편 필요” [세계초대석]

석유제품, 반도체와 함께 수출 상위권
친환경 시대에도 석유는 필요 에너지
에너지 안보 위해 석유 물량 확보해야
‘지속가능항공유’ 지원 정책 마련 시급

정유산업 박리다매 저마진 구조 영업
현실 외면한 ‘횡재세’ 공정·상식 아냐
한·사우디통상협회 5월에 펀드 협약
亞 최대 네옴시티 전시관 韓 설치 예정

석유는 한국에서 쓰는 전체 에너지의 37.4%(지난해 기준)를 차지하는 제1의 에너지원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중동 등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국내 공장에서 정제해 휘발유, 경유 등을 뽑아낸 뒤 일부는 국내에서 소비하고, 일부는 수출한다.

 

놀라운 건 원재료가 없는 이 산업에서 한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한국은 세계 2위 석유제품 수출국이다.

박주선 대한석유협회장이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한국 수출 기여도 2위인 정유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 회장은 석유 산업의 수출 기여도가 큰 만큼 규제 완화와 연구·개발(R&D) 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한국 석유산업계를 대표하는 대한석유협회 박주선 회장을 만났다. 지난달 19일이다.

 

박 회장은 검사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해 오다 2021년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참여했고, 윤 대통령 당선 뒤에는 제20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2022년 10월 대한석유협회장, 최근엔 한국·사우디아라비아산업통상협회장을 맡으며 경제인으로의 길을 걷고 있는 인물이다.

 

박 회장은 서울 영등포구 석유협회 사무실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역할들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하는 게 당연한 사명”이라며 그간의 인생 역정과 다른 업역(業域)에서 일하는 이유를 말했다.

 

그는 “정유산업은 국가 경제 성장과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며 “정유사들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있도록 격려를 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일문일답.

 

―정유산업의 수출 기여도가 높은지 몰랐다.

 

“2022년 기준 반도체에 이어 수출 2위, 지난해엔 4위가 석유제품이었다. 한국은 원유 정제 능력이 세계 5위인 석유 강국이다. 항공유 수출은 세계 1위이며, 휘발유와 경유 수출 규모도 세계 2, 3위를 차지한다. 지난해 반도체시장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석유가 수출을 뒷받침해 줬다. 노후 정제 설비를 가진 나라들은 새로운 시설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호주가 그런 사례로, 한국 석유제품을 많이 수입한다. 새로운 시설로 대체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대결 등 국제 정세가 복잡하다. 원유 수급은 잘되고 있나.

 

“전쟁 이전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6%였는데, 러·우크라 전쟁으로 수입을 금하다 보니 중동 의존도가 커지긴 했다. 이스라엘·하마스(전쟁)는 석유 수출국은 아니어서 수급에 영향을 받진 않았다. 한국은 30여개국에서 70여종의 원유를 수입한다. 수입선이 다변화돼 있어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또 한국 원유 수입 물량의 60%는 장기계약 물량이다. 석유비축량도 충분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90일분 비축수준을 권유하는데, 한국은 민간 차원에서 108일분, 정부 차원에서 128일분 정도 비축하고 있다.”

 

―올해 유가가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국제기관에서는 대체로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유 공급 감소 우려와 지정학적 불안 요소 등이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오펙 산유국 간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는 지난 3월 초에 상반기까지 200만배럴 감산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중국, 인도 등 신흥 국가에서 석유 수요가 증가하고, 부분적 경기 활성화 조짐도 보이면서 석유제품 소비가 늘고 있다. 다만 경기침체가 기대한 만큼 해소되지 않는 등 석유 소비 하락 요인도 있어 유가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휘발유 가격을 올리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정유사는 국제유가에 운송비, 정제비용만 더해 이익을 낸다. 소비자 가격 자체를 낮출 수 없는 구조다. 2006∼2022년 17년간 정유사 영업이익률은 1.8%밖에 안 된다. 같은 기간 제조업 영업이익률은 6.3%, 서비스산업은 4.8%였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이익을 보는 줄 알지만 정유산업은 박리다매 저마진 구조로 영업하고 있다는 점을 국민이 이해해 주셔야 한다.”

 

―‘횡재세’ 논란이 있었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가 큰 이득을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

 

“횡재세는 특별한 투자나 시설 개선, 기술 개발을 하지 않고도 동일한 노력을 하는데 갑자기 시장 변동이 생겨 이익이 많이 나는 경우를 말한다. 정유사 영업이익은 2%도 안 되는데, 2006∼2022년 중 5년은 적자였다. 이익이 많이 날 때 횡재세를 추가로 부담하게 하려면, 손해가 나면 손실을 보상해 줘야 하지 않나. 무엇보다 얼마큼의 이익이 횡재이익이냐 개념 자체가 불분명하다. 횡재세를 도입했다는 영국 등 일부 국가는 전부 산유국이다. 또한 친환경에너지 전환 시대에 새로운 기술 및 시설 투자에 막대한 자금을 써야 하는 정유사의 현실은 외면한 채 횡재세 도입을 말하는 것은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다.”

 

―올해 정유사 실적은 개선될 것으로 보나.

 

“지난해 정유사 매출은 전년 대비 15.6%, 영업이익은 79% 감소했지만, 영업이익률은 1.7%로, 평년 수준이었던 것으로 평가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석유 수급 환경이 개선되고, 정제 마진이 양호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인도, 호주 등에서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다만 유럽,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 장기화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등이 변수가 될 수 있다.”

―국내 정유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소돼야 할 규제가 있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 석유 정제 원료로만 쓰이는 중유를 수입해 항공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최종 소비 단계에서 부과되어야 하는 개별소비세가 원료 단계에도 부과되고 있다. 이는 개별소비세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수입 액화석유가스(LPG)에는 부과되지 않는데 국내 생산 LPG는 석유수입부과금을 내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탈탄소·친환경에너지 확대에도 석유산업이 중요한가.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화가 진행 중이지만, IEA는 2050년까지 매년 석유 수요가 0.2%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공급 확대가 더디고, 러·우크라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 중요성이 커지면서 석유가 재평가되고 있어 석유 수요는 계속 늘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미국 엑손모빌이나 셰브론 등 석유메이저는 석유 기업을 인수합병(M&A)하고, 영국 BP, 셸 등도 석유 가스 사업을 강화하는 추세다. 친환경에너지 시대라도 석유는 필요한 에너지 자원이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석유 물량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다만 지속 가능한 연료를 위한 연구개발(R&D) 등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 개정안이 올해 초 국회를 통과했다. 어떤 의미를 가지나.

 

“이전에는 정유사가 원유 외 친환경 원료를 투입해 친환경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법 개정으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와 폐식용유, 바이오매스, 생활폐기물 등 친환경 정제 원료를 공정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친환경 석유제품을 만들고, 국제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계기가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친환경 제품을 누가 먼저 양산하느냐가 수출시장에서의 영향력이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제 능력을 고려했을 때 수출 제고에도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

―지속가능항공유(SAF) 수요가 늘고 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SAF시장은 2027년 현재보다 20배 내외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주요국은 이미 SAF시장 확대를 위해 우리보다 앞서 나아가고 있다. SAF 개발을 안 하면 항공기 이착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정부의 과감한 지원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반도체나 배터리 등과 동일한 수준에서 국가전략기술로 인정해 국가 세제 혜택이나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사우디통상협회장을 맡게 되었다. 역할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2016년 ‘2030 사우디 비전’을 발표했다. 한국은 ‘비전2030’ 중점 협력 국가로 지정됐다. 어느 때보다도 사우디와의 관계가 우호적이다. 분위기는 조성됐으나 사우디 입장에서 우리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 역량이나 평가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정부 정책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돕고, 비전2030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나 이미 참여했던 기업에 대한 정보를 사우디에 전달하는 데 민간 차원에서 역할을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 한·사우디통상협회가 출범했다. 300여개 민간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미흡하지만 국가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고,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힘을 보태는 것이 도리이기에 참여하게 됐다.”

 

―앞으로의 한·사우디통상협회 활동은.

 

“협의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계획이 세워져 있다. 5월 펀드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아시아 최대 규모 네옴시티 상설 전시관이 한국에 설치될 예정이다. 한·사우디 통합지원센터 설립도 예정돼 있다. 기업들이 네옴시티에 참여하면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우디의 자금력과 우리의 기술력이 결합하면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

박주선 대한석유협회장/2024.3.19./이재문 기자

◆박주선 대한석유협회장은…

 

●1949년 전남 보성 출생 ●서울대 법대 학사 ●제16회 사법고시 수석합격 ●제16·18·19·20대 국회의원 ●국회 부의장 ●제20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 ●대한석유협회장(2022∼) ●한국·사우디아라비아 산업통상협회장(2024∼)


대담=나기천 산업부장, 정리=이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