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가 시작부터 뜨겁다. 무엇보다 만년 하위권을 맴돌던 한화 이글스가 3월을 7연승으로 마무리하면서 단독 선두로 나서는 등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류현진이라는 ‘빅스타’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한화가 이번 시즌 화제의 팀이 되기 충분했지만 시즌 개막 초반 안정된 투수진과 화끈한 타격으로 연일 승리 소식을 전해 프로야구 판도를 흔들고 있다.
그동안 눈물겨웠던 한화 야구를 묵묵히 지켜보며 다른 구단 팬들로부터 ‘보살’이라고 놀림받았던 이글스 팬들이 올해는 가을야구에 나가 그동안 당했던 설움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모습이다. 이런 열망 때문인지 한화의 경기는 홈뿐 아니라 원정까지 많은 팬이 들어차고 있다. 숨죽여 있던 한화 팬들이 적극적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는 의미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정치판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풍’이 불고 있다. 비례정당으로 등장한 조국혁신당이 2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며 이번 총선 판도를 뒤흔드는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국이라는 이름이 주는 주목도가 아무래도 커 보인다. 조국과 그의 가족이 현 정권에 의해 저지른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탄압받았다는 동정표도 작용한 것으로 느껴진다. 특히 조국혁신당이 내세우는 화끈하고 선명한 정권 심판 메시지도 한몫하는 것 같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잡음과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발언’이나,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의 출국 사건 등 현 정권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한 날선 비판이 더해지면서 40~50대 중도층이 조국혁신당으로 쏠리는 현상이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적지 않아 투표 기피층이었던 주변의 지인은 “기존 정치세력이 윤석열 정권을 비판할 때보다 조국혁신당에서 비판할 때 더욱 시원한 느낌이 든다”면서 이번엔 투표장에 가겠다고 한다.
이렇듯 보통 주목과 관심 정도였던 기세가 돌풍으로 변할 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이전에는 숨죽이고 있던 ‘샤이(shy) 팬’이 수면 위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샤이 팬들이 두꺼운 껍질을 뚫고 나올 수 있을 만큼 분위기나 여건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돌풍의 발생은 현실의 분명한 반영이다. 하지만 ‘갑자기 세게 부는 바람’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돌풍은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사안이 돌풍을 넘어 사회적 현상이 되려면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지속 가능성이다.
프로야구로 돌아와 보자. 지금 들떠 있는 한화 팬들을 보고 몇몇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롯데 팬에게 시즌 초반 연승은 익숙한 일이기 때문이다. 롯데는 매년 4월까지 선두를 내달리는 등 잘나가다가 날이 더워지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롯데를 봄에만 잘한다고 다른 구단 팬들은 ‘봄데’라고 놀린다. 롯데 팬들은 질투를 섞어 한화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경고하곤 한다. 관건은 한화가 이런 질시를 벗어나려면 봄을 지나 여름, 더 나아가 가을까지 기세를 이어가느냐다. 진짜 만년 꼴찌 한화가 달라졌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지금의 전력을 시즌 내내 유지할 수 있는 지속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도 한화는 수년간 하위권을 맴돌며 뛰어난 유망주들을 쓸어담을 수 있었고 투자를 통한 외부영입도 열심히 하면서 어느 정도 선수층을 두껍게 했다. 지금의 선전이 짧은 돌풍이 아닌 지속성을 가질 것이라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다.
반면 조국혁신당의 지속 가능성은 불투명해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이 두 자릿수 의원을 배출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다음 국회 4년 내내 살아남을 정당이 될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물론 선명한 기치를 내세워 정국을 주도할 수도 있겠지만 군소 정당의 한계 탓에 민주당의 2중대에 머물거나 흡수될 수도 있다. 또한 20대에서 낮은 지지율을 보인다는 점에서 미래를 보여주지 못한다. 조국 당대표가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어 사법리스크까지 안고 있다는 점도 조국혁신당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