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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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인권탄압 지도 최초 제작… 국제사회 반인도범죄 알렸다” [세상을 보는 창]

10돌 맞은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
이영환 대표·신희석 법률분석관

공개처형지 등 시각화… 5월엔 DB 확장
해외 기금으로 운영… 정권 영향 안받아

김정은 경제난 대처용·권력형 탄압 심화
中은 탈북주민 수백명 강제 북송 계속

유엔, 금주 초국가적 대처 결의안 전망
정부도 中 송환금지 촉구 목소리 내야
국군 포로·억류자 진상규명 등도 시급

유엔은 ‘전환기 정의’(轉換期 正義)를 “한 사회가 과거 역사 속의 대규모 잔학 행위의 유산을 처리하기 위해 책임을 규명하고, 정의를 세우며, 화해를 이루려는 모든 과정과 메커니즘”으로 규정한다. 국가 체제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북한에 언제쯤 이러한 전환이 일어나고, 또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전환기 정의 절차의 실행 여부는 한반도 평화 구축과 화해 실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 분명하다.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TJWG·Transitional Justice Working Group)은 북한을 비롯, 전 세계 인권 참상을 알리기 위해 2014년 9월 서울에서 설립된 인권조사기록단체다. 이영환 대표와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이 단체를 이끄는 쌍두마차다. 이 대표는 1999년,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이 개소했을 때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북한인권운동에 첫발을 디뎠다. 언론사를 거쳐 이명박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정책홍보를 담당했다. 성격이 밝고 쾌활하다. 거기다가 달변이다. TJWG에서 프로젝트 기획과 총괄 업무를 맡는다.

올해로 설립 10년째를 맞은 인권조사기록단체 TJWG 이영환 대표(오른쪽)와 신희석 법률분석관이 지난달 28일 TJWG 사무실에서 반인도 범죄가 자행되는 북한 내 인권 개선을 위한 매핑(mapping) 작업과 국제연대의 중요성 등을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하버드법대 출신인 신희석 분석관은 국제법을 활용해 유엔과 미국 등에서 북한 인권 공론화에 힘쓰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의 자제다. 부친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국제이슈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신중하며 표정에 변화가 거의 없다. 두 사람의 상반된 캐릭터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단체 구성원(9명) 모두가 20~40대 젊은 세대다. 패기와 열정으로 시작된 이들의 도전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나름 족적을 남겼을 법하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에 있는 TJWG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나 북한 인권 실태와 TJWG의 미래 구상에 대해 들었다.

―어떤 일을 하나.

“우리 단체의 핵심 활동은 국제 기준에 따른 과학적 인권침해 조사와 기록, 그리고 분석이다. 탈북민 800여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구글어스 위성사진을 활용, 2017년 이후 2년마다 북한 내 공개처형 매핑(mapping) 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2021년 보고서의 경우 35개 언어로 370회 이상 언론에 보도됐다. 5월이면 북한 당국에 의한 구금, 납치, 강제실종 피해자 9만6000여명의 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DB)도 확장 구축된다. 우리가 축적한 인권조사기록 노하우를 이라크 쿠르드족 등 해외 인권단체들과 공유하고 보고서를 발간하도록 지원하는 국제연대 활동도 하고 있다.”

북한 내 공개처형 현황을 파악해 지도화하는 이유는.

“2014년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를 접했다. 북한 내 인권침해를 반인도범죄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구했다. 이를 계기로 북한 인권상황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시각화 작업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후 북한 내 처형지, 암매장지 등 인권탄압 장소를 위성 좌표에 근거한 지도로 만드는 첫 작업에 나섰다. 당시 뉴욕타임스가 ‘그들은 어디에 묻혔을까’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 관리들의 반인도범죄를 억지하고 향후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 실현을 도우려 한다.”

―다른 북한인권단체와 차이점은.

“활동과 가치의 초점을 보편적 인권의 북한 적용에 뒀다. 주로 해외기금을 지원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5년마다 바뀌는 정권에 영향받지 않는다. 2015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매핑 프로젝트는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후원으로 시작됐다.”

―최근 북한 상황은.

“작년 5월 북한 황해남도에서 가족과 함께 해상 탈북한 김모씨가 지난달 15일 유엔 인권이사회 부대 행사에서 코로나19 국경 봉쇄 후 식량난으로 강력범죄가 늘었고, 한 달에 한 번꼴로 공개처형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정권은 이런 참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량 확보에 써야 할 재원을 핵·미사일 개발에 탕진하고 있다. 유엔이 내년 9월까지 COI 업데이트 보고서를 내기로 한 주된 이유다.”

―현재 탈북민 현황은.

“한 해 1000명 안팎이던 탈북민 입국 인원은 코로나19 국경 봉쇄 후 급감했다. 중국으로 탈북 자체가 어려워졌다. 현재 입국하는 탈북민은 코로나 봉쇄 전에 탈출한 이들이거나 해외파견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중국 정부의 대규모 탈북민 강제북송이 논란이 됐는데 막을 방법이 없나.

“지난해 9월 국군포로 가족과 14살 때 길림성으로 팔려갔던 김철옥씨를 비롯해 탈북민 수백명이 강제북송됐다. 고문과 성폭력, 강제낙태, 정치범수용소, 처형 리스크에 노출된 탈북민 북송은 국제법 위반이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이번 주 채택 예정인 결의안은 각국에 북한과의 탈북민 관련 정보 공유를 자제하고, 탈북민을 노리는 북한 국가보위성 요원들을 겨냥해 초국가적 대처를 촉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중국에 탈북민 강제송환 중단과 제3국 재정착 허용을 요구해야 한다. 아울러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반인도범죄 등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대중 압박을 통해 강제북송을 견제할 수 있다.”

―북한 내에서 지역별로 인권 유린에 차이가 있는지.

“함경도, 양강도의 북·중 국경지대는 밀무역, 탈북민을 통한 외부정보 유입으로 체제 이완이 두드러져 북한 당국의 탄압이 심하다. 황해도는 최대 곡창지대이나 북·중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역, 탈북민 송금을 통한 구매력이 낮고 평양처럼 정치적으로 우대받지도 않다 보니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

―3대 세습이 이뤄진 북한의 인권 탄압 형태에 차이점을 든다면.

“김일성 시대에는 정적 제거를 위한 권력형 탄압이 많았다. 김정일 치하에서는 ‘고난의 행군’ 등 극심한 식량난 속에 생계형 범죄 억제를 위한 공개처형이 횡행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는 장성택 처형 같은 권력형 탄압과 코로나19 이후 경제난 대처용 탄압이 공존하고 있다.”

―2020년 들어 북한에선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 생소한 법들이 생겨났는데.

“코로나 봉쇄 이후 북한 내 K콘텐츠는 확산일로다. 더구나 북한은 경제난으로 대북방송 재밍(전파 방해)도 어려운 상황이다. 반동법 등을 만든 건 이런 외부 정보 유입을 막기 위해서다. 공개 처형 등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고는 있으나 이미 둑은 허물어지기 직전이다.”

―MZ세대들이 북한 인권에 관심 갖게 하려면.

“쉽지 않은 일이다. 북한 인권 증진은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북한 주민이 자유로워지면 북한 정부도 식량, 복지 재원을 무기 개발에 전용하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북한, 그리고 그 배후의 중국, 러시아의 독재체제가 유지된다면 우리의 인권, 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온전할까 싶다.”

―2021년 언론 자유에도 기여했다고 들었다.

“당시 문재인정부에서 ‘대북전단 금지법’ 강행에 이어 ‘가짜 뉴스’에 징벌적 배상을 허용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아이린 칸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에게 한국이 ‘가짜 뉴스’ 징벌적 배상을 도입하면 다른 나라도 따라 할 것이라 경고했다. 칸 특별보고관은 3일 만에 우리 정부에 서한을 보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무산시켰다.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 보장은 우리 목표 중 하나이며, 한국 언론의 자유는 우리 활동의 중요한 기반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대로 어디서 발생하든 불의는 세상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

ㅡ올해로 단체 설립 10주년이다. 성과와 아쉬움도 있을 텐데.

“인권단체를 비영리 ‘스타트업’처럼 시작해 북한 인권 조사기록과 국제이슈화에 기여했다. 2018년에는 NED가 주는 ‘민주주의상’까지 받았다. 상상을 실현시켰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북한 인권과 정의 실현은 요원하다. 북한 주민과 탈북민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서울에서 불과 60㎞ 떨어진 북쪽에서 태어난 것이 무슨 죄인가.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를 비롯해 우리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는 또 무슨 죄인가. 국내에서도 ‘국군포로진상규명위원회’ 설치 등 할 일이 많다.”

ㅡ바람이 있다면.

“북한 전환기가 시작돼 현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 집단매장지 발굴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 과거 뉘른베르크, 도쿄재판소처럼 평양재판소가 세워져 반인도범죄를 단죄하고 인권과 정의가 회복될 날이 오길 기대한다.”


박병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