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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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88.2%·배 87.8%↑ 천정부지 과일값… 유가·공공요금 곳곳 ‘물가 복병’ [뉴스 투데이]

3월 물가 3.1% 상승

정부 지원에도 수요대비 물량 부족
석유류 14개월 만에 상승세 전환도
尹 “안정자금 무제한·무기한 투입”

2023년 냉해 피해 등 생산 급감 예고에도
정부, 대책 미리 마련 못해 실기 논란

수입량 많은 두바이유 매월 상승곡선
동결로 묶은 공공요금도 못버틸 수도

한은 “물가 방향성 불확실성 크지만
추세적으로는 둔화 흐름… 지켜봐야”

물가 불안이 3월까지 이어졌다. 신선과실 가격 오름폭이 40%대를 지속한 데 이어 석유류마저 상승 전환한 끝에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1% 올랐다. 상승폭은 2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 3%대 고물가가 이어졌다.

 

아울러 사과가 역대 최고 상승률(88.2%)을 기록한 데다 공공요금 등 여타 품목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석유류 가격이 14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서는 등 앞으로도 물가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무서운 장보기 과일 물가 상승과 유가 불안 등이 이어지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까지 두 달 연속 3%대를 기록한 가운데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과일 가격을 살펴보고 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사과 가격은 1년 전보다 88.2% 올라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역대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재문 기자

통계청이 2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4(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3.8%에서 11월 3.3%, 12월 3.2%, 올해 1월 2.8%까지 내려갔지만 2월 3.1%로 상승 전환한 바 있다.

 

지난달 물가 상승은 농·축·수산물과 석유류가 이끌었다. 먼저 농축수산물은 전년 동월보다 11.7% 오르며 전월(11.4%)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농산물이 20.5% 올라 2월(20.9%)에 이어 20%대나 뛰었다.

 

주요 품목을 보면 사과 상승률이 88.2%에 달해 2월(71.0%)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역대 최고 상승폭이다. 배도 87.8% 올라 역대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귤(68.4%)과 토마토(36.1%), 파(23.4%) 등도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국제유가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석유류 가격도 1.2% 올랐다. 석유류가 전년 동월 대비 오른 건 지난해 1월(4.1%) 이후 14개월 만이다. 석유류의 전체 물가 상승폭에 대한 기여도는 2월만 -0.06%포인트였다. 물가를 낮추는 효과를 보였는데 3월 들어 0.05%포인트로 반등했다.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높은 144개 품목으로 작성하는 생활물가지수는 지난달 3.8% 오르며 2월(3.7%)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특히 신선식품지수는 19.5% 상승했는데 이 중 신선과실이 40.9% 올랐다. 신선과실은 2월(41.2%)에 이어 2개월 연속 40%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제외 지수는 2.4% 상승하며 2월(2.5%)보다 오름폭이 줄었다.

◆尹 “가격안정자금 무제한·무기한 투입”

 

정부가 지난달 대대적인 물가안정대책을 마련했는데도 사과·배 가격이 고공행진을 지속한 건 정책 집행 시점이 중순이었던 데다 수요 대비 공급 물량 자체가 부족한 탓이다.

 

정부는 지난달 체감물가 안정을 위해 농산물 납품단가 지원 755억원, 농축수산물 할인지원 645억원 등 1500억원 규모의 가격안정자금을 마련해 18일부터 집행했다. 이에 따라 초순·중순·하순 열흘 단위로 나눠 조사하는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에 정책효과는 일부만 반영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하순으로 갈수록 농산물 가격이 꺾였고 정책효과가 나타난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통계청 물가지수엔 정상가를 낮추는 납품단가 지원 정책은 반영되지만, 특정 카드 등의 사용에 따라 가격을 깎아주는 할인지원 정책은 반영되지 않는다. 소매가를 기준으로 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가격과 통계청 물가지수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aT의 농산물 가격정보에 따르면 3월 평균 사과 소매가격(후지 상품 10개 기준)은 2만7003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2847원)보다 18.2%(4156원) 오르는 데 그쳤다.

 

일각에서는 작년 냉해 피해, 탄저병 등으로 사과와 배 생산이 약 30% 감소하는 등 공급 부족 사태가 일찌감치 예견된 점을 고려하면 정부 대책이 너무 늦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미숙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되고 이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 무기한으로 투입하고 지원 대상을 확대하겠다”면서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할인지원과 수입과일 공급 대책을 중소형 마트와 전통시장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 등에 따르면 이달 농축산물 할인 지원율은 기존 20%에서 30%로 상향됐다. 정부는 더불어 직수입 과일 물량도 상반기 5만t 이상으로 확대해 소형 슈퍼마켓에도 시중가보다 20% 싸게 공급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2030년까지 사과와 배의 계약재배 물량을 지난해 대비 각각 3배, 1.5배 늘리고, 사과를 2배 이상 생산하는 스마트 과수원 특화단지를 2025년 5개소에서 2030년 60개소로 확충하는 등 장기 공급 대책도 내놨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 최상목 “하반기로 갈수록 빠르게 안정”

 

정부는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는 하향 안정될 것으로 내다본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3월에 연간 물가의 정점을 찍고 하반기로 갈수록 빠르게 안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석유류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데다 상반기 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공공요금도 언제든 복병으로 돌변할 수 있는 등 변수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2월 평균 배럴당 80.9달러에서 3월 평균 83.9달러(28일 86.3달러)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유가와 농산물 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당분간 매끄럽지 않은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추세적으로는 둔화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생활물가가 높은 오름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물가 전망 경로상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물가 목표 수렴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향후 물가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종=이희경 기자, 김수미 선임기자, 이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