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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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해준다고 암이 사라지나”…사직 전공의 환자 지원 나섰지만 반응은 ‘싸늘’

사직 전공의 중심 '전국 암 환자·만성질환자 분류 프로젝트'
환자단체 “환자의 불안감을 가벼운 불편감 정도로 치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일부가 환자들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진료 차질로 인한 환자들의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인데, 정작 환자단체는 “환자의 불안감을 가벼운 불편감 정도로 치부한 것 아니냐”고 쓴소리를 했다.

2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한 환자가 벽에 기대 있다. 연합뉴스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씨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체계를 일방적으로 훼손하는 정부와 달리 저희(전공의)는 환자분들의 불편함과 불안을 해소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안을 실천하겠다”면서 “이번주 내로 ‘NCTP(Nationwide Cancer/Choronic disease Triage Project·전국 암 환자 및 만성질환자 분류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NCTP는 진료에 차질이 생긴 환자의 △이름 △연락처 △질병명 및 진단 시기 △첫 진단 병원 및 진단 교수 이름 △기존에 내원하던 병원 △불안 요인 △예약·치료가 지연 현황 △지연에 따른 불편함 등 의견을 접수한 뒤, 진단 교수에 연락해 지연에 따른 위험도를 평가하고 각 환자의 상황에 맞는 대안을 찾아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직한 전공의가 주축이 되고 휴학 의대생, 교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환자 고통 안타까워…불안 해소할 것”

 

류옥씨는 “1일 전공의와 의대생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며 “병원을 지키는 지친 의료진에 대한 미안함과 고통받는 환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교차했고,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환자들과 함께 대안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암 환자와 만성질환자, 특히 1~3개월 단위에서 암이 진행되거나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진료 연기로 불편함을 겪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다”며 “병원, 교수, 개원의와 연계해 환자의 불안을 해소하고 실질적 도움을 받게 하겠다”고 부연했다.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빌딩 회의실에서 젊은의사(전공의·의대생) 동향조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류옥씨는 “교수와 병원의 협조를 부탁하는 과정에 있다”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김창수 회장에게 ‘휴학 학생들과 사직 전공의들의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복지부에 NCPT 센터가 구축돼 공식 시스템화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환자단체 “위로해준다고 암이 사라지나”

 

환자들 반응은 싸늘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김성주 대표는 “본말이 완전히 전도됐다”며 “돕겠다는 마음은 가상하지만, 문제의 핵심이 뭔지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건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으로 당장 복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지금 설명을 들으면 상담사가 해주는 수준인데, 지금도 국립암센터에서 피해자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 그게 실효성이 있으면 환자들이 이렇게 불안해하겠냐”고 말했다. 환자 상황에 맞는 대안을 찾아주는 방식에 대해서도 “암 환자들은 완치가 어렵다는 생각에 서울에서 치료받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장기화하고 있는 2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의료 관계자가 진료 접수대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번 프로젝트가 환자들의 불안감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 대표는 “수술을 못 받고 항암치료를 못 받는 심적 고통을 단순히 감기 정도의 불편함으로 가볍게 여긴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수술을 못 받는데 말로 몇 마디 위로해준다고 암이 사라지진 않는다”면서 “환자들은 당장 수술을 받는 게 가장 절박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의료계가 이런 식으로 두달 가까이 버티고 있는데, 전공의들은 의료 현장에 빨리 돌아와서 의료 파탄을 조속히 종료해달라”고 덧붙였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