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대통령의 조건 없는 만남 제안, 전공의들 외면해선 안 돼

“시간·장소·대화 주제 다 열어 놔”
공식 반응을 안 내는 건 무책임
대화 나와 명확한 입장 밝혀야

윤석열 대통령과 전공의들의 직접 대화 성사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조윤정 홍보위원장이 그제 “대통령이 전공의를 만나 달라”, “전공의도 조건 없이 대통령을 한 번만 만나 달라”고 눈물로 호소해서다. 이에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전공의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며 어제 대통령 일정을 비워 놓으며 호응했다. “시간, 장소, 대화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전공의들이 원하는 대로 대화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와 전의비는 “대통령과 전공의의 직접 대화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전공의를 대표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나 박단 대전협 회장은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총선 일주일 전 나온 유화책”, “밀실 만남은 안 된다”는 부정적 반응이 많아 논란 중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장이 어렵게 마련됐는데 젊은 의사들이 미적거리는 건 떳떳하지 못하다. 윤 대통령이 한 발 물러서며 손을 내민 만큼 만나서 명확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밝히는 게 온당한 것 아닌가. 대부분 국민들도 이 만남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걸 원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전공의들이다. 이들은 의대 증원 철회를 고집한 채 의협과 의대 교수들이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한다며 중재마저 거부해 왔다. 보건복지부 차관 등 정부가 수차례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박 회장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 누가 전공의들을 대표하는지도 모호하다. 오죽하면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들이 아예 숨어버렸다”고 하겠나. 정부가 전공의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현실이 해법 마련을 더 어렵게 한다. 전공의들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전공의들의 병원 집단이탈이 두 달 가까이 되면서 환자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병원들은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의대 교수협·전공의·의대생이 낸 ‘의대증원’ 집행정지 신청은 잇따라 각하됐다. 의료현장이 무너지고 명분도 약해지는데 전공의들은 언제까지 바깥으로만 돌 건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실이 “2000명 숫자에 매몰되지 않겠다”고 말한 건 대화하겠다는 뜻이다. 전공의들은 이제 대통령과 만나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밝히고 사태를 수습하는 책임감을 보여줄 때가 됐다. 의협과 교수들도 전공의들이 대화의 장에 나서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