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페인 커피의 유해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커피 생두에서 카페인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데 사용하는 염화메틸렌이 발암물질 명단에 올라 있는 게 마침내 문제가 됐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환경보호기금’이 식품생산에 이 물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청원서를 지난 1월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했다. 이어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2027년 시행할 법안이 염화메틸렌 사용을 규제할 것이라는 사실이 최근 알려져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전미커피협회(NCA)를 비롯한 반대 측은 염화메틸렌을 사용한 디카페인 커피를 미국 성인의 10%가량(2600만여명)이 지난 50여년간 마셔 왔는데 별문제가 없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커피가 사망률을 낮추고 암과 파킨슨병 예방 등 건강에 유익한 사실을 밝힌 여러 연구에서 디카페인 커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한 점을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건강상 이점이 많은 ‘염화메틸렌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과학을 무시하고 미국인의 건강을 해치는 처사라고 항변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 문제는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염화메틸렌 디카페인 커피를 만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생산업체에게 유리하다. 물과 액체 이산화탄소를 활용하는 방식보다 향미가 더 좋다는 평가도 우세하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디카페인 커피의 상당량이 염화메틸렌으로 처리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커피 성분을 추출하는 데 사용하는 물질로 물, 주정, 이산화탄소만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커피전문점에서 ‘염화메틸렌 디카페인 커피’를 사용해 음료를 만들어 판매하면 처벌받는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볶은 원두나 추출액 상태로 수입돼 가공되거나 캡슐커피와 인스턴트커피 등 완제품으로 들여오는 커피들 속에 염화메틸렌으로 처리한 디카페인 커피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염화메틸렌을 사용해 만든 커피를 두고 ‘유럽식 디카페인(European Method decaf)’ 커피라고 부른다. 명칭이 고급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발암논란이 일고 있는 커피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메틸렌 클로라이드(MC)나 디클로로메탄(DCM)이라고 표기된 것도 염화메틸렌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잘 헤아려야 한다.
돈이 더 들지만 유해논란이 없는 다른 제조법이 여럿 있는 만큼 염화메틸렌을 굳이 사용해야 하느냐는 지적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답을 내놓아야 한다. 염화메틸렌은 끓는점이 섭씨 40.4도로 낮아 약간의 열을 가하면 휘발하기 때문에 커피 생두에 잔류될 위험성이 크지 않은 물질로 분류된다. 하지만 발암 위험성에 대해선 불안감과 의혹을 확실하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염화메틸렌은 우리 노동부의 고시를 비롯해 미국환경보호청과 유럽연합에 ‘발암물질 2B그룹’으로 분류돼 있다. 암을 일으키는 증거가 동물에게서는 확실하게 밝혀졌고, 사람에게는 암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은 물질이라는 의미이다. 장기간 노출된 근로자들 사이에서 뇌암 발생을 증가시켰다는 보고도 있다.
괴테가 검은 커피액 속에 인간을 홀리는 물질이 있다고 직관함에 따라 모습을 드러낸 카페인. 200여년이 지나 카페인 자체는 유용하고, 되레 이를 제거하는 데 사용하는 물질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많은 사람들이 마셔 왔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희망’과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절망’ 사이에 분명 ‘위험’은 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마실 수 있는 ‘건강한 방식의 디카페인 커피’도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