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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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억류 선박 ‘대북제재 위반’ 수상한 항적

지난 3월 30일 나포 무국적 화물선
부산서 러 향하다가 기수 돌려
자동식별장치 두달간 끄고 잠적
러에 북한산 무연탄 운송 추정

대북제재 위반 연루 의혹으로 한국 정부가 억류하고 있는 선박의 수상한 항적과 잠적 기록 등 특이사항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산 무연탄을 싣고 러시아로 향했다는 추정도 나온다. 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불법 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4일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나포된 무국적 화물선 ‘더이(De Yi)’호는 선박 위치정보를 보여 주는 머린트래픽(Marine Traffic)에서 2023년 내내 운항 기록이 없다. 선박들은 보통 AIS를 통해 위치를 알려 충돌을 예방하는 등 안전을 확보한다. 더이호가 AIS를 끄고 운항하며 불법 행위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국제 수역을 운항하는 선박들이 AIS를 늘 켜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더이호는 올해 1월7일에야 장치를 켜고 중국 웨이하이항 인근 바다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약 3주 뒤인 1월29일 부산항에 입항한 이 선박은 다음 목적지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신고하고 그쪽을 향하다가 4시간 만에 기수를 부산 방면으로 돌리는 특이한 항적을 남겼다. 선박은 다음 날인 1월30일 오전 위치 신호 발신을 중단하며 지도에서 사라졌다가 58일 만인 3월28일 한국과 중국의 중간 수역에 다시 등장했다.

 

AIS를 끄고 두 달이나 잠적하는 사례가 일반적이지 않은 만큼 이 선박이 지도에서 사라진 기간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에 의문이 제기된다. 대북제재 결의 위반에 연루된 대부분 선박은 AIS를 끈 채 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 환적 방법으로 유류 등을 교환하며 제재를 회피해 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출신인 닐 와츠 전 위원은 “북한 해안에서 50∼70마일 이내로 접근할 때 불법 활동을 하는 선박이 AIS를 꺼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기록만 보면 북한 관할 제한 수역에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VOA와의 통화에서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나포된 선박 조사와 관련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사항이라 세부적인 것은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