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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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외국인 유학생 유치' 경쟁… 언어장벽은 '나몰라라'

“영어강의 부족… 전공도 못 채워”
소통에 어려움… 학생간 단절 심화
교육부 유학생 30만명 유치 목표
‘토픽 3급’ 자격 기준 유연화 추진
“대학 수업 이해… 6급 이상 돼야”
유학생들 “한국어 강의 확대를”

독일인 유학생 A(24)씨는 서울 소재의 한 대학에 ‘영어트랙’ 과정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2021년 한국에 왔다. A씨는 한국어 실력이 부족했지만, 영어로만 진행하는 수업을 듣고도 학위 이수가 가능한 영어트랙이면 졸업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A씨는 “교양을 포함한 120학점은 물론, 전공 63학점도 영어 수업으로 채울 수 없었다”며 “유학생들은 전공학점을 더 많이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는 심층전공을 선택하지 못하고 교양대학 강의로 학점을 채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정부와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국내 대학의 유학생 사이에선 ‘언어 장벽’을 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유학생이 들을 수 있는 영어 수업이 부족하거나, 한국어 수업을 듣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대학들이 유학생을 ‘일단 유치하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대학가에 따르면 교육부는 2027년까지 유학생 30만명 유치를 목표로 유학생 입학 요건 유연화를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교육국제화역량인증제’에서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 3급 이상을 받은 학생이 각 대학에 입학하는 유학생 중 3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기준을 해외의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 이수 등의 교육수강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유학비자 발급 기준도 동일하게 바뀌었다. 

외국인 수험생들이 한국어능력시험(TOPIC)을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대학에 온 유학생 중 토픽 3급 이상을 취득한 비중은 절반 정도다. 문제는 토픽 3급 수준의 한국어 실력으론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통상 토픽 3급은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 4급부터 신문 기사를 읽을 수 있는 정도로 보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토픽 4급도 초등학교 3∼4학년 수준”이라고 말한다. 연구나 업무 수행이 유창하게 가능하려면 최고 등급인 6급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더군다나 유학생 상당수는 대학 수업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한국어 실력을 갖고 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경희대는 지난해 기준 외국인 학부 재학생이 2971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데, 이 중 토픽 4급 소지자는 1460명에 그쳤다. 토플(TOEFL) 점수만 충족해도 되는 영어트랙 학생까지 합쳐도 언어 기준에 부합한 학생은 54.8%였다. 가천대는 경희대와 성균관대에 이어 유학생 수가 많은 학교이지만, 언어 기준 충족 학생이 30.3%에 불과했다. 

언어장벽에 맞닥뜨린 유학생들은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립되고 있다.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팀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팀플’에서 유학생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내·외국인 간 단절도 심각해지는 것이다. 중국인 유학생 리우베이베이(22)씨는 “배척이 심해질수록 유학생들도 끼리끼리 다니면서 폐쇄적으로 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이 한국에 온 뒤에도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국어 강의를 확대하고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리우씨가 다니는 대학의 경우 유학생의 한국어 강의 수강이 필수다. 이에 대해 리우씨는 “상급반조차 3급 이상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한국어 실력이 천차만별이라 수업 내용이 의미 없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023년 10월 6일 대구의 한 대학에서 열린 '한글날 기념 한국어 퀴즈대회'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어 골든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어트랙을 내세운 대학들의 경우 영어로만 학점 이수가 가능하도록 수업을 늘려야 한다는 게 유학생들의 목소리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전공과목에 대해 영어 수업을 제공하고 있지만, 학생 입장에선 수강 신청상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외국어 강의를 늘리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교수들이 강의 전체를 외국어로 진행하는 데 부담을 느끼다 보니 실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