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文, ‘민주주의가 떨고 있다’는 박노해 시 공유…사실상 ‘투표해달라’ 메시지

문재인 전 대통령, 4일 SNS에 박노해 시인의 ‘오늘은 선거 날’ 제목 시 공유
‘조용한 응원’이라던 입장과 상반된 것으로 해석…‘정권 심판’ 강조 메시지로 보여
문재인 전 대통령이 4일 오전 경남 창원시 창원대학교 교정을 산책하며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퇴임 후 ‘잊히겠다’던 공언은 사라지고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총선거 지원군으로 등판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4일 박노해 시인의 ‘오늘은 선거 날’ 제목 시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다.

 

투표에 관한 감정을 담은 것으로 해석되는 시의 공유는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이나 후보에게 ‘조용히 응원을 하고 있다’던 문 전 대통령의 입장과 달리, 정권 심판 위한 표를 적극적으로 던져달라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향한 메시지로 읽힌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자신의 SNS에 “박노해, <오늘은 선거 날>”이라는 짤막한 글과 함께 시를 공유했다.

 

‘오늘은 선거 날, 투표소에 간다’로 시작해 총 11연으로 구성된 시는 ▲‘국가 권력의 칼을, 내 삶의 결정권을 / 그 손에 쥐여주는 것은 떨리는 일이다’ ▲‘이 나라는 떨고 있다 / 민주주의는 떨고 있다 / 삶의 자유는 떨고 있다’ ▲‘이게 뭐라고 / 실망하고 또 실망할 걸 알면서도 / 난 지금 떨고 있다’ 등 표현을 담았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같은 시를 공유한 누리꾼들은 ‘모든 분들이 투표 했으면 좋겠다’, ‘투표의 권리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소중한 국민의 권리를 잘 지켜야 한다’ 등 반응을 낳았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일 울산 동구에 출마한 김태선 민주당 후보를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지역 유권자들과 차례로 악수하거나 사진을 찍는 등 사실상의 지원 유세를 펼쳤다. 울산 방문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는 “이번 총선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너무나 중요한 선거”라며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이나 후보를 찾아 ‘조용히 응원’을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용한 응원’이라는 표현과 달리 같은 날 오후 울산 중구 출마자인 오상택 민주당 후보를 격려하는 자리에서 문 전 대통령은 “칠십 평생 살면서 여러 정부를 경험해봤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다”며 “우리 정치가 너무 황폐해졌다. 막말과 독한 말이 난무하는 저질의 정치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날을 세웠다.

 

하루 앞선 지난 1일에도 이재영 민주당 경남 양산갑 후보와 함께 양산 물금읍의 벚꽃길을 걸으면서 “칠십 평생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 것 같다”며 “정말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도하다”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윤석열 정부 직격이다.

 

윤석열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도, 문 전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하려고 생각하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거듭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과 후보를 찾아서 ‘조용히 응원’하고 격려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하고 있다.

 

4일에는 경남 창원 성산에 출마한 허성무 민주당 후보 지원 유세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여러모로 대한민국이 퇴행하고 있는데 이번 총선을 통해 대한민국의 진정한 봄을 이뤄내야 한다”며 “이렇게 봄이 왔지만, 현재 나라 형편은 아직도 혹독한 겨울이고, 민생이 너무 어렵다”고 답했다.

 

박노해는 1980년대 중반 노동문학의 새 지평을 연 노동자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언뜻 본명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박노해’는 그의 필명으로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권 시기이던 1989년 국내에서 자생한 최대의 비합법 사회주의 혁명조직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결성 멤버이자, 당시 대학강사이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도 어느 정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