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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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 치매 노모 숨지자 60대 두 딸도… 또 ‘돌봄 비극’ [뉴스 투데이]

강동구 아파트서 3명 숨진 채 발견
딸들 母 사망 비관 비극적 선택한 듯
고령화로 치매 환자 100만명 달해
“정부, 간병 가족 사회 단절 살펴야”

서울 강동구에서 치매를 앓던 90대 노모와 60대 두 딸이 지난 6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노모가 숨지자 비관한 두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로 국내 치매 환자의 수는 1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치매 환자의 간병을 가족이 떠맡는 구조가 비극을 불러온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여성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자택에서는 먼저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90대 노모가 발견됐다. 집에서는 두 딸이 쓴 것으로 보이는 유서가 나왔는데, 치매를 앓던 어머니의 사망을 비관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 모녀가 노모의 치매로 인한 생활고 등을 겪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대상자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두 딸의 나이가 60대라는 점에서 이른바 ‘노노(老老) 돌봄’에 대한 부담이 사회적 고립감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치매 가족을 돌보던 가족 간의 비극은 반복되는 중이다. 지난 1월 대구에서는 치매에 걸린 80대 아버지를 10년 넘게 돌보던 50대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해 9월에는 경기 수원에서 치매를 앓던 70대 아내를 살해한 80대 남편 A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아내의 병간호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던 것으로 조사됐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가족이 치매 환자의 주된 돌봄자 역할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단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급격한 고령화로 국내 치매 환자의 수는 급증하는 추세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치매 추정 환자는 98만4601명에 달했다. 2018년 75만488명에서 5년 새 31.2%나 증가한 것이다. 추정 치매 유병률은 10.41%인데, 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치매 환자도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빠르게 늘어나는 치매 환자 돌봄은 직계가족이 떠맡는 실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치매 노인과 돌봄 제공자를 위한 맞춤형 정책 방안 모색’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 환자의 70.2%가 동거 가족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국가가 지원하는 장기요양보험·노인돌봄서비스를 받는 치매 노인은 48.7%로 절반에 못 미쳤다.

 

치매 환자의 의료비와 간병비 등 질병 관리 비용도 큰 부담이다. 2021년 기준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평균 관리 비용은 2112만원이다. 같은 해 월평균 가구소득(464만2000원)을 연 소득으로 환산한 5570만원의 약 49.5%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복지 대상자에 대한 정보 제공을 확대하고 지원·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주제로 한 민생토론회에서 치매 어르신과 가족을 위한 ‘치매 관리 주치의’를 도입하겠다고 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치매 국가 책임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놨다.

 

석 교수는 “돌봄을 맡은 가족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해외에서는 가족 돌봄을 주요 정책 대상으로 두고 돌봄자에 대한 휴가나 자조 그룹 형성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강동구 세 모녀의 경우 치매 진단과 지원 연계, 치매 예방 사업 등을 담당하는 치매안심센터에는 등록돼 있지 않았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