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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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낮달

기혁
손톱에 뜬 반달이 시간을 밀어내는 중이다.
까맣게 때가 탄 손톱을 자르면 푸른 하늘
은하수가 쏟아져나올 것만 같다.

멀리 장롱 밑으로 숨어버린 손톱 조각을 찾아서 절을 올리는 자세로 엎드린다.

우주의 시간에서
이주 노동자의 시간으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손톱을 쓸어모을 때마다
달빛에 묻혀놓은 눈물이 반짝거린다.

당신이 어떤 우주든
손톱을 함부로 맡겨서는 안 된다.

아침이면
열 개의 반달이 뜨던 손으로
세상의 모든 손잡이를 움켜쥘 것이다.

자라난 손톱을 보고서야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까맣게 때가 탄 손톱을 잘라내면서 이만큼이 나의 사흘, 나의 닷새, 하고 헤아린다. 참 지저분하기도 하지. 누가 볼까 두려워 잽싸게 깎는다. 그러다 가끔은 생살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때가 탄 시간을 잘라낸 뒤에도 한동안 손끝이 몹시 아리다. 은하수가 쏟아지기는커녕….

 

시간은 대체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모양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자주 절을 올리는 자세로 엎드린다. 한껏 고개를 숙인다. 그 시간의 증거인 손톱을 쓸어모을 때마다 눈물이 반짝거린다는 말은 그래서 과장 같지가 않다. 시를 읽는 동안 계속해서 손톱을 들여다보게 된다. 열 개의 반달을. 달이 사라지고 나면 어떤 내일을 맞게 될까. 조금 괴로운 아침이 찾아들지도. 그럴 때마다 생각해야지. 곧 다시 차오를 달을. 어쨌든 살아 있으므로, 어김없는 것들을.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