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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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멀어진 ‘비핵화·통일’…전봉근 교수 “남북 모두 대화 동력 사라져” [한반도 인사이트]

냉랭한 남북 관계는 개선될 조짐 없이 고착화되는 중이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감시망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틀 밖에서 새 판을 짜야 하는 도전에 놓였다. 신냉전 구도 속 멀어진 남북 사이만큼 비핵화나 통일도 중장기적 과제로 밀려났다. 갈림길에 선 북핵외교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다. ‘북핵위기 30년’의 저자인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와 9일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전 교수와의 일문일답.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3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활공비행전투부(탄두)를 장착한 신형 중장거리 고체탄도미사일 '화성포-16나'형의 첫 시험발사를 지난 2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남북 간 대화가 끊겼고 재개될 조짐도 안 보인다.

 

“북핵을 둘러싼 환경과 구조가 모두 바뀌었다. 1990년대, 2000년대 탈냉전기에 북한은 냉전기 때 공산권으로부터 제공받던 경제와 안보가 무너져버렸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안전 보장, 한국의 경제 지원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지난 30년간 있었던 모든 남북, 북미 대화의 핵심은 이랬다. 북미 간에는 ‘관계 개선’, 남북 간에는 한국이 어떤 경제 지원을 하면 거기에 해당하는 만큼 북한이 약간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5∼10년 탈-탈냉전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이 부상하며 북·중·러 세력권이 만들어지는 상황이다. 이들이 북한에 경제도 안보도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북한 입장에서 미국, 한국과 대화의 동력이나 동기가 굉장히 약해졌다.”

 

-이번 정부에서 북한 비핵화나 남북 관계 개선에 소극적인 모습이 보인다.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관계 개선도 불필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니 우리로서도 북한과 특별히 대화할 동기가 없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서로 동기가 약해진 것이다.”

 

-비핵화는 실패인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원했던 것은 두 가지다. 자꾸 체제 위기, 경제 위기를 겪는 북한이 망하면 어떻게 흡수통일할까. 동독이 그런 유인을 줬고 그렇게 통일을 추구한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핵 개발이 한반도에서 우리에겐 최대 싫은 상황이라 이것을 막는 것. 그 2개를 매우 추구했는데 지금 사실상 완전히 실패한 것 같다. 

 

30년 전 핵무기가 없던 북한이 지금은 50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보고 있다. 1990년대에만 해도 북한이 체제·경제·식량 위기로 내일 모레면 망할 거라고 다 기대했는데 지금은 그런 말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 북한이 경제 위기는 엉망이지만 내부적으로 잘 버티고 있고 체제가 나름대로 유지되고 있어서다. 그 뒤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도와주는 것이 있겠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그동안 지향한 두 목표가 이제 거의 달성 불가능하게 돼 버렸다.”

 

-지금 정부 차원의 문제는 아닌건가.

 

“모든 정권의 잘못으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남북 교류와 협력, 통일 정책에서. 북한이 아쉬워서 관계를 개선하다 보면 통일로 가는 진전이나 비핵화가 가능하리라 기대했는데 그런 대북 전략이 잘못된 것이다. 중국이 부상했고 김정은이 생각보다 잘 버텼고 러시아가 귀환했다. 북한은 그동안 핵 개발에 성공했고 체제가 안정됐다. 대북 정책 환경에 구조적 변화가 생긴 것이다.”

 

-비핵화 실패 원인은.

 

“우리가 1990년대, 2000년대에 북한보다 압도적 국력과 외교력 우위에 있었는데 좋은 기회를 못 살렸다. 당시 북한을 조금 더 잘 다룰 수 있는 수많은 여건과 조건을 활용하지 못했다. 가령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기보다는 북한이 굉장히 궁핍할 때 우리가 적극 관여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남북 관계를 끌고 가지 않았을까.

 

또 하나는 북핵 문제의 경우 우선 1994년도에 제네바 합의 해서 2002년에 결국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를 깬다. 북한이 몰래 농축 핵개발을 하니까. 만약 우리가 그걸 깨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의 비핵화 외교 최대의 수단은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이었다. 무엇이든 몽둥이로 누구를 바꾼다는 건 굉장히 어렵다. 제재 압박과 함께 좀 더 강력한 유인책을 동원했더라면 북한 비핵화가 좀 더 잘 되지 않았을까. 개념적으론 그렇게 보게 된다.”

 

-너무 제재만 했다는 것인가.

 

“사실 우리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의 핵개발은 잘못하는 거긴 하니까. 불법이니까 중단하라고 제재 압박하는게 맞는 거긴 한데 그게 국내적이라면 그렇게 끝날 수 있다. 감옥에 집어넣으면 되는데 국제정치라는 건 불법이라 해서 국제정치에서 통하는 게 아니다. 그럼 자기 혼자 살아나면 되니까. 전쟁을 해서 북한의 핵을 금지할 수 있나? 북한이 문 딱 닫고서 핵 개발하는데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좀 더 유인책까지 확대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핵 개발 하지 않겠다던 북한에 우리가 속은 것인데.

 

“결과적으로 북한 때문에 일련의 정상회담 등이 다 실패했다. 북한이 핵 개발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몰래 해서 이렇게 된 것도 답이 맞다. 근데 거기에 속은 우리가 바보인 것이다. 국제 정치는 원래 속고 속이는 것이다. 국내 정치와 다르다. 기만책이 기본이다. 우리의 외교적 실패다.”

 

-한편에선 북·일 정상회담 얘기가 계속 나온다.

 

“일본은 자기들이 개입해서 한반도를 좀 더 안정화시키겠다는 그런 동기를 많이 가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남북 간 동시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 한반도 문제에 일정 부분 개입하고 발언권을 가지려 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가장 큰 불똥은 일본에 튀기 때문이다. 일본은 냉전기에 남북 간 엄청난 군사적 대치 상태에서도 남북 모두와 대화의 연결고리를 놓지 않았다. 일본의 한반도 정책 기본 원칙 중 하나가 ‘남북한 등거리 대화’다. 한국과 수교했으니 경제적 협력 등 한국이 주축이지만 결코 북한과 대화를 단절은 하지 않는다.”

 

-현재의 고착화 된 국면이 바뀔 전망은.

 

“모든 나라가 강대국 정치 게임에 말려들어가 잔잔한 문제에서 여력이 없다. 미국이나 중국 세력 경쟁에 집중돼 있고 그 외의 모든 분쟁은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도다. 미국이 최근 들어 북한에 대해 ‘대화할 준비 돼 있다’고 틈만 나면 말하는데 잘 안되고 있다. 

 

일본이 그 틈을 타서 오히려 미국 대신 또는 지역의 평화 안정과 이익을 위해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는 부분도 있다. 일본은 국내 정치적으로 제일 중요한 납북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 국제 정치적으로는 한반도 문제를 직접 안정화하겠다는 이유로 그러려고 한다. 그게 되면 일본의 국제적 지위에도 좀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치 옛날에 중국이 6자회담 나섰을 때 자기들이 호스트로 대화함으로써 국제적 지위가 많이 올라갔던 것처럼. 현재 상황에서 일본이 그렇게 나선다면 미국으로서는 좀 긍정적으로 볼 것 같다.

 

미국은 관심이 있음에도 북한과 대화에서 많이 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히 대화하자고 해서 북한이 나올게 아니고 구체적 보상을 제시해야 하는데 미국은 불량 국가에 보상을 제시하면서까지 굳이 협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국제 정치적으로 그런 사례를 남기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국내 정치적으로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