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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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궈진 인두로 꾹… 꾹… 잊혀가는 전통예술 불타오르네 [밀착취재]

낙화장(烙畵匠) 기능보유자 김영조 장인

숯불에 달군 인두, 한지·나무·가죽에 지져
산수화 등 그리는 수백 년 역사 공예·회화
“전통 맥 계승… 미술 한 장르로 각인 노력”

초록빛 새순이 돋아나 봄이 완연한 충북 보은군 속리산 아래 보은전통공예체험학교 작업실에 들어서니 종이 타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6호 낙화장(烙畵匠) 기능보유자인 김영조(71) 장인이 화로에 달궈진 인두를 잡고 산수화 작업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질 락(烙)자와 그림 화(畵)자가 합쳐진 낙화는 한자 뜻 그대로 인두를 불에 달궈 한지나 나무, 가죽 등의 표면을 지지는 방식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지만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전통공예·회화 기법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6호 낙화장(烙畵匠) 기능보유자인 김영조(71) 장인이 충북 보은전통공예체험학교 작업실에서 불에 달궈진 인두를 사용해 한지에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1788∼1863)이 쓴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낙화를 잘해 이름을 날렸다는 박창규(1796∼1861)에 대한 언급이 있다. 낙화가 최소한 조선 후기 이전부터 우리 전통화법으로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충북 보은전통공예체험학교 전시실에서 김영조 낙화장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김영조 낙화장은 대학에서 전문적 미술교육을 받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진학을 포기했다. 그래도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미술이라는 꿈과 밥벌이라는 현실 사이에 고민하던 1972년, 19세 청년의 두 눈은 신문광고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다. ‘낙화수강생모집’. 스승이 되는 전창진 선생이 낸 신문광고였다. 당장 찾아간 학원에서 스승의 산수화에서 처음 접한 낙화가 흔들리던 마음을 휘어잡아 운명의 길로 잡아당겼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6호 낙화장(烙畵匠) 기능보유자인 김영조(71) 장인이 충북 보은전통공예체험학교 작업실에서 불에 달궈진 인두를 사용해 한지에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낙화를 배우면 취업도 할 수 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어요.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수강생 생활을 시작했어요.”

 

동기생 30여명과 시작한 문하생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두 손 들고 포기하는 동기가 하나, 둘, 셋 늘어나는 시간 속에서 사군자, 화조도, 산수화 등을 기본부터 착실히 배우며 낙화에 몰두했다.

문제는 생활고였다. “경제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당시 낙화는 예술로 취급받지도 못하던 때이거든요. 낙화를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한때 방황도 했습니다.”

김영조 낙화장이 불에 달군 인두를 지져 한지에 낙화 작업을 하고 있다.

고민 끝에 생계를 위해 속리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리고 한지 대신 나무판을 인두로 지져 만든 낙화 기념품을 팔아 큰 인기를 끌었다.

형편이 나아졌지만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낙화는 예술적 가치가 큰 회화인데 기념품으로 만들어 팔면 인정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가 엄습했다. 낙화를 기념품이 아니라 예술로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뜻을 세웠다. 가게를 처분하고 2000년 본격적으로 낙화 연구에 들어갔다. 하루 15시간씩 연습하고 습작을 하며 노력한 끝에 2007년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한 ‘낙화산수병풍’의 수상을 시작으로 여러 공모전서 10여 차례 상을 받으며 낙화의 예술적 가치를 세상에 알렸다.

불에 달궈진 인두를 짚풀로 만든 인두닦이에 문질러 숯에서 묻은 이물질을 제거한다.
불에 달궈진 인두를 짚풀로 만든 인두닦이에 문질러 숯에서 묻은 이물질을 제거한다.

마침내 2010년 10월 충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됐다. 2018년 12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 낙화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면서 꿈을 이뤘다. 국가무형문화재는 다음 달 문화재청의 이름이 국가유산청으로 바뀌면서 국가무형유산으로 개칭된다.

“개인의 영광을 떠나서 묻혀 있던 우리 전통 예술인 낙화가 인정받고 제도권으로 들어와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기쁩니다.”

낙화에 사용되는 한지를 고르는 김영조 낙화장. 낙화에는 이합지, 삼합지로 두꺼운 전통 한지가 쓰인다.

낙화는 질 좋은 전통 한지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두꺼운 이합지나 삼합지가 좋다. 한지는 한 겹이라 앞이 비칠 정도로 얇은 일합지, 일합지의 두 배 정도 두께인 이합지, 세 배 정도 두께인 삼합지 등으로 나뉜다.

낙화용 인두는 대장간에서 주문 제작한 평인두와 앵무부리인두 두 종류를 사용한다.

그림을 그리는 유일한 도구인 인두는 평인두와 앵무부리인두가 전부다. 촉과 날 부분이 직선이고 면이 평평한 평인두는 굵은 선과 넓은 면을 그린다. 뾰족한 모양의 앵무부리인두는 가는 선과 점을 표현한다.

김영조 낙화장이 풍구를 이용해 참숯에 불을 붙이고 있다. 우리나라 참숯만 사용하는데 열이 높고 냄새가 안 나기 때문이다.
낙화에 사용하는 인두를 참숯 화로에 달구고 있다. 인두는 평인두와 앵무부리인두 두 종류를 사용한다.

인두를 달구는 화력으로는 참숯만 사용한다. 열이 높고 냄새가 안 나기 때문이다. 한지를 잘 펴서 재단한 뒤 그림의 선을 먼저 그리고서 달궈진 인두로 지져 낙화만의 특징이 있는 그림을 완성한다. 고도의 기술과 집중력으로 농담과 질감을 표현해 나아가는 작업이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예술의 맥이 끊기는 상황에서 미술을 전공한 딸 김유진(42)이 국가무형유산 낙화장 이수자로 대를 잇고 있어 고마운 마음이다.

충북 보은전통공예체험학교 전시실에서 김영조 낙화장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6호 낙화장(烙畵匠) 기능보유자인 김영조(71) 장인이 충북 보은전통공예체험학교 작업실에서 불에 달궈진 인두를 사용해 한지에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미술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는 딸이 이수자라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세세히 전해줄 수 있어 좋아요. 어려운 길에 들어섰지만 우리 전통 낙화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연구하고 노력해서 미술의 한 장르로 크게 성장시켜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전통 낙화를 연구·발전시키며 52년 쉼 없이 한길을 걸어온 인생이 오늘도 지향(紙香) 그윽한 작업실을 지킨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신체의 기능은 조금씩 식어가지만 열정만큼은 여전히 벌겋게 달궈진 인두를 닮았다.


보은=글·사진 이제원 선임기자 jw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