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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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선 참패했다고 정부의 의대 증원 원칙 흔들려선 안 돼

안철수 “1년 유예·책임자 경질” 빈축
의료계도 총선 결과 자의적으로 이용
민주당, ‘사회적 합의 견인’ 책임져야

총선이 여당 참패로 끝나자 여당 내부에서 의대 증원을 유예하자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고 단계적 증원 방침을 정한 뒤 국민 분노에 화답해야 한다”며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책임자들의 경질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총선에서 졌다고 의사단체들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자는 건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고, 책임자를 경질하면 앞으로 어느 공무원이 책임지고 의료개혁에 나서겠나. 의대 증원을 원하는 절대 다수 국민의 바람을 저버리는 무책임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의사 출신이라 의료계 편을 드는 건가. 여권이 한목소리를 내도 쉽지 않은데 내부에서 개혁에 역행하는 목소리를 내는 건 부적절하다.

의료계가 총선 결과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정부를 공격하는 소재로 이용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이상호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은 “총선 결과는 절차를 무시하고 비민주적으로 의료정책을 밀어붙인 것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협 비대위는 브리핑에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재차 요구했다. 국민이 동의할 수 없는 일방적 주장이 아닌가. 법원은 전공의, 의대 교수 등이 제기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3번 각하한 데 이어 어제 의협 비대위 간부들이 제기한 면허정지 집행정지 신청도 기각했다. 이런데도 사직한 전공의 1300여명이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을 15일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고소한다니 기가 찰 일이다.

이번 총선에선 큰 폭의 의대 증원을 적극 주장해 온 김윤 서울의대 교수가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가 되는 등 의사 출신 후보 8명이 당선됐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환자들 고통이 큰 만큼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의 대표로서 의료계를 설득하고 대안을 내기를 기대한다. “국회가 나서서 사태를 중재해야 한다”는 환자단체들의 호소도 갈수록 커지고 있지 않나. 특히 거대 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이재명 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의대 증원 충돌에 대해 “각계가 참여한 공론화 특별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의대 증원 정책에는 민주당도 찬성한 만큼 대승적으로 협력하고, 딴지를 걸지 말아야 한다.

부산 지역병원 10여 곳에서 ‘수술할 의사가 없다’며 급성 심장질환자를 받아주지 않아 50대 환자가 숨진 사실이 그제 뒤늦게 밝혀졌다. 환자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더 이상 나와선 안 된다. 정부는 총선 결과에 상관없이 의대 증원 정책을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왔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나흘째 의대 증원 관련 브리핑을 열지 않아 정치권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어려울수록 정공법이 최선이다. 의대 증원의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정부와 대통령실은 원칙적으로 대응하되 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