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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은 어떻게 비극이 되는가 [편집인의 원픽]

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처음에는 명주도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엄마를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않았다. 자신 안에 있는 자비심이란 얼마나 알량하고 얄팍했던지. 명주는 엄마를 돌보기 시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가족 돌봄 문제를 다룬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으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문미순 작가. 문 작가는 “간병 문제가 사회적 빈곤과도 관련돼있는만큼 정부의 정책적 관심이 시급하다”고 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50대 명주와 뇌졸중 아버지를 돌보는 20대 청년 준성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나무옆의자)의 한 구절이다. 지난해 제19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문미순 작가의 소설이다. 서울 강동구에서 치매를 앓던 90대 노모와 60대 두 딸의 사망 뉴스를 접하고 이 소설을 떠올렸다. 작가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홀로 간병하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치매 등 중증 질환으로 인한 간병, 돌봄 수요는 늘어나는데 대개 그 몫은 가족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간병인을 두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큰데다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한국적 문화가 깔려 있다. ‘90대 치매 노모 숨지자 60대 두 딸도...또 ‘돌봄 비극’’(4월8일자·이정한 기자)기사는 ‘노노(老老) 돌봄’의 비극을 조명하고 있다. 

 

◆“장례를 잘 부탁드립니다.”

 

지난 6일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화단에서 60대 여성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자택에서는 먼저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90대 노모가 발견됐다. 집에서는 두 딸이 쓴 것으로 보이는 유서가 나왔는데, 치매를 앓던 어머니의 사망을 비관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를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적혀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파악되지는 않아 경찰은 자신들이 돌봐온 노모가 숨지자 두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초 대구에서는 치매에 걸린 80대 아버지를 10년 넘게 홀로 돌봐온 50대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YTN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이른바 ‘노노 돌봄’에 대한 부담이 사회적 고립감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오랜 기간 치매 등 중증 환자를 돌보다보면 일상이 무너지고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실제 치매 가족을 돌보던 가족 간의 비극적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올해 초 대구에서는 치매에 걸린 80대 아버지를 10년 넘게 홀로 돌봐온 50대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뒤 동반자살했고, 지난해 9월에는 경기 수원에서 치매를 앓던 70대 아내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한 80대 남편이 경찰에 붙잡혔다.

 

올해 치매 환자가 1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이들에 대한 간병은 여전히 가족들이 맡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치매 환자 100만명 시대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치매 추정 환자는 98만4601명에 달했다. 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데 추정 치매 유병율(10.41%)을 감안하면 치매 환자도 100만명을 넘는다. 치매 환자 1명에 연간 들어가는 관리비는 2021년 기준 2112만원이다. 같은 해 월평균 가구소득(464만2000원)을 연 소득으로 환산한 5570만원의 약 49.5%에 달한다. 

 

2022년 말 기준 전국 256개 기초 지방자치단체에서 치매안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진단과 지원 연계, 치매예방사업 등을 하는 기관이다.   연합뉴스 

24시간 지켜봐야하는 질환의 성격을 감안하면 간병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간병인 고용 비용은 월 370만원으로 추산된다. 이를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가구는 많지 않다. 대부분 돌봄의 몫이 가족에 돌아가는 이유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 환자의 70.2%가 동거 가족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돌봄 파산’ ‘돌봄 지옥’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돌봄을 맡은 가족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소설 속의 명주는 ‘영케어러’ 준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품위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상식밖이다. 하지만 묘하게 설득당한다. 추천사에서 은희경 소설가는 이렇게 썼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잔혹한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연대와 온기를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전환된다.” 

 

P.S. 문미순 작가에 물어봤습니다. 

 

-치매를 앓는 90대 노모와 60대 두 딸의 숨진 사연이 보도됐다. 경찰 수사로는 간병을 맡았던 두 딸이 노모의 사망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

 

“수사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간병을 해왔다면 우울증을 느꼈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들이 간병을 맡다보니 경제적 어려움도 겪지만 정서적, 정신적으로도 힘들게 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가족들이 ‘독박 간호’를 할 수밖에 없다. 소설을 쓰면서 느꼈던 게 국가 대책들이 많이 나와야하는데 논의 진척이 너무 늦다. 간병비를 건강보험 편입시킨다는 정책도 발표만 됐지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건 없다.”

 

-가족 돌봄을 다룬 소설에 독자들 반응은 어땠나.

 

“많은 독자들이 정말 시급한 문제이고 나라에서 뭔가 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는 리뷰를 남겼다. 소설 주인공들의 선택이 비윤리적인 일임에도 독자들이 이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응원하게 됐다는 리뷰가 많았다. 그만큼 경제적 빈곤 상태속에 간병하는 이들의 절실함, 절박함에 공감한 것 같다.” 

 

-직접 남편을 간병했던 경험에서 소설이 시작됐는데 다음 작품 구상은 어떤지. 

 

“노인 빈곤 문제에 관심이 많다. 간병 문제도 사회적 빈곤문제와 연결돼있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가난에 처한 사람들의 간병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적 빈곤 문제, 구조적 문제에서 바라봐야한다. 정책 입안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터놓고 다뤄야한다고 생각한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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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egye.com/newsView/20240407508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