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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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거구제의 저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고건 전 국무총리는 1985년 제12대 총선에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 소속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지역구는 전북 군산·옥구였다. 1개 지역구에서 의원 두 명을 뽑는 중선거구제가 시행되던 시절이었다. 고 전 총리가 1위, 야당인 민주한국당(민한당) 소속 후보가 2위로 나란히 여의도행(行) 티켓을 거머쥐었다. 민한당은 ‘관제야당’, ‘민정당 2중대’ 등으로 불리며 조롱을 받던 당인 만큼 사실상 여당 후보 두 명이 금배지를 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연히 일각에선 ‘동반 당선’이란 표현을 쓰며 비아냥거렸다.

지난 10일 제22대 총선 개표 방송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앞줄 가운데) 등 당 지도부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1987년 6월항쟁의 결과 민주화가 이뤄지며 여야는 선거법 개정에 나섰다. 민정당은 소극적으로, 김영삼(YS) 총재의 통일민주당(민주당)과 김대중(DJ) 총재의 평화민주당(평민당)은 적극적으로 소선거구제를 지지했다. 결국 1개 지역구에서 의원 한 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이듬해인 1988년 4월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고 전 총리는 평민당 후보한테 져 재선에 실패했다. 훗날 그는 “평민당은 호남 지역구를 싹쓸이하며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면서 “(낙선은) 20대에 고등고시에 낙방한 이후 두 번째로 맛본 큰 실패”라고 회고했다.

 

세계 주요국의 선거제를 보면 소선거구제가 대세이긴 하다. 민주주의 본고장 영국을 비롯해 그 영향을 받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이 모두 소선거구제다. 이는 양당제와 궁합이 잘 맞는다.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대결하고,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경합한다. 제3정당은 끼어들 틈이 없다. 한국은 지역주의가 워낙 강한 탓에 소선거구제 시행 직후 양당제가 정착하진 않았다. 3∼4개 정당이 저마다 특정 지역에 쌓은 기반을 토대로 유의미한 정치 행위자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1990년 이른바 ‘3당 합당’으로 보수 성향의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하며 진보 성향 민주당과 둘이 다투는 양당제로 전환됐다. 이후 드물게 제3정당의 돌풍으로 다당제가 출현하기도 했으나, 크게 보면 민자당에서 유래한 국민의힘과 민주당에 뿌리를 둔 더불어민주당 두 정당이 경쟁하는 구도로 이어져왔다.

소선거구제는 1개 지역구에서 의원을 단 한 명만 뽑는 만큼 2등 이하 모든 낙선자들이 받은 표는 전부 사표(死票)가 된다. 이를테면 후보 4명이 경합하는 경우 30% 정도의 득표율로도 이길 수 있다. 이 경우 당선자가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 70%가 사표다. 다당제 국가인 프랑스에선 1차 투표에서 50% 이상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1, 2위 후보를 상대로 2차 결선 투표를 실시해 최종 승자를 가린다. 하지만 양당제인 한국은 거의 대부분 지역구에 후보가 두 명이라 결선 투표가 무의미하다. 최근 끝난 22대 총선에서 총 254개 지역구의 정당별 득표율을 계산해보니 민주당이 약 50.5%, 국민의힘은 45.1%를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5.4%p 차이인데도 지역구 의석수는 민주당 161석(63.2%), 국민의힘 90석(35.4%)으로 크게 벌어졌다. 아슬아슬하게 2위로 낙선한 국민의힘 후보들이 받은 사표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소선거구제의 저주’를 제대로 겪은 총선이었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