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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X도 아니면서"… 끊이지 않는 인종차별 갈등 [연중기획-소멸위기 대한민국, 미래전략 세우자]

국내 체류 외국인 250만시대
국민 10명 중 6명꼴 편견 인식
접촉면 넓혀 상호이해 높여야

외국인 희화화하거나 비하 콘텐츠
랜선·스마트폰 등 타고 급속 확산
방심위 2023년 심의 건수만 2336건
시정 요구도 1년새 400여건 늘어

현행법상 금지·처벌할 규정 없어
모욕죄도 피해자 특정이 걸림돌
전문가 “예방·인식 개선 위해 시급”
‘이민청’ 설치와 함께 논의 제언도

“한국 X도 아니면서 어디라고 와.”

 

지난해 이태원 참사 1주기 당시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들었던 이 말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인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랐고, 2012년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첫 특별 귀화한 한국인인데도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3월17일 열린 '2024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매년 3월21일)' 기념 대회 참석자들이 '임금 차별 철폐', '이주여성 노동자 평등한 일자리 보장', '이주민의 자유와 평등'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인 A씨는 지난달 3일 한국 출장길에 서울 이태원에서 처음 만난 여성의 지갑을 찾아 주고도 되레 도둑으로 몰려 멱살까지 잡혔다. 여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에게 불법 체류 여부를 먼저 확인했다. A씨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누명을 벗었다.

 

A씨는 “흑인이라 인종차별을 당한 것 같다”며 “(사건 현장) 옆에 있던 아저씨도 상황은 들어 보지도 않고 훔쳐 간 지갑을 돌려 달라고 소리쳤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 250만명 시대(지난해 말 기준)를 맞았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이 외국인들의 이민과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민과 이민자 간 갈등을 최소화해 서로 어울리며 조화롭게 살아가려면, 차별적인 고정관념을 버리고 접촉면을 넓혀 상호 이해를 높이는 게 급선무다. 인종차별을 막고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선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외국인 차별 경험 ‘비일비재’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들은 인종과 무관하게 차별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흑인뿐 아니라 백인 여성에 대한 차별도 엄연히 존재한다.

 

국내 한 대학의 교환학생인 독일인 B씨는 “한국인들은 서양인이 개방적이라고 생각해 서양 여성을 성적으로 쉽게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성적 농담 등에 반응하지 않으면 ‘서양인인데 왜 그러냐’고 할 때가 있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국은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이 차별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부족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국민 10명 중 6명꼴로 외국인의 인종과 국가에 따른 편견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다르게 대한다는 의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 단위로 실시하는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인 인종·국가에 따른 편견이 있다는 응답은 2019년 62.2%, 2022년 67.4%를 기록했다.

 

특정 종교에 대한 포용성이 부족한 것 역시 기저에 차별 의식이 깔려 있다. 대구 이슬람 사원(모스크) 건축을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대구 북구는 2020년 건축을 허가했다가 주민들 민원이 빗발치자 이듬해 공사 중지를 통보했다. 이에 무슬림인 건축주들이 해당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에 나서 2022년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됐음에도, 갈등은 여전하다.

 

이와 관련해 경북대 유학생 무아즈 라자끄씨는 “합법적으로 모스크를 건설하려 해도 (한국) 정부와 누군가로 인해 계속 궁지로 몰리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외국인 주민, 이주민에 대한 차별은 인권 침해로까지 이어지지만 지원 체계는 미흡하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베트남어 상담원인 웬티현씨는 “가정 폭력과 인권 침해로 상담받는 이주 여성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18세 이상 국민 1만5303명을 상대로 실시한 ‘인권 의식 실태’ 조사에 따르면, ‘결혼 이주민과 이주 노동자 인권이 존중되는 정도’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54.3%가 ‘존중되지 않는 편’이라고 답했다.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는 9.1%였다.

◆왜곡된 이미지 확대 재생산

 

외국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는 미디어로 확대 재생산되며 심화된다. 외국인을 웃음의 대상으로 희화하거나 비하하는 콘텐츠가 랜선이나 스마트폰 전파를 타고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올해 1월 유튜버 쯔양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한국으로 시집 온 필리핀인’이라는 니퉁과 음식을 함께 먹는 영상을 올렸다. 니퉁은 어눌한 말투로 “원래는 농부의 마누라였는데 지금은 개그우먼”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니퉁은 진짜 외국인이 아닌 개그우먼 김지영이다. 그는 KBS2 ‘개그콘서트’에서 외국인 며느리 니퉁 캐릭터를 연기한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문제의 영상에 인종차별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쯔양은 결국 해당 영상을 내리고 사과문을 올렸다.

 

세계일보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받은 ‘차별 및 비하 정보 심의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등 각종 차별·비하 콘텐츠 심의는 2022년 1700건에서 지난해 2336건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방심위 심의를 통한 시정 요구도 1222건에서 1644건으로 증가했다.

 

김우석 방심위 위원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유튜브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한 외국인 차별·비하 등 혐오 콘텐츠는 온라인뿐 아니라 방송으로 무분별하게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며 “사회적 통합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차별·비하 정보의 경우 자체 모니터링해 적극적인 심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실에도 현행법상 인종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한 판사는 “한국은 (유엔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 협약’과 ‘자유권 규약’ 체약국으로서 혐오 표현 등을 금지할 입법 의무가 있는데도 아직 관련 법률이 제정돼 있지 않다”며 “형법상 모욕죄나 (온라인상 명예훼손으로)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엔 처벌할 수 있지만 ‘피해자 특정’이 항상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례상 특정한 집단에 대해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죄는 집단 구성원 개개인이 피해자로 특정된다고 볼 수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인종차별 관련 모욕죄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14일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을 확인해 봐도 최근 1년간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언행을 한 모욕 혐의로 기소돼 처벌받은 경우는 없다.

◆‘차별금지법’ 필요 목소리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인종차별 금지가 담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차별금지법에 차별인 것과 차별이 아닌 것을 분명히 규정하고 차별의 원인을 밝혀 차별을 시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어떤 게 차별인지와 차별 예방이나 인식 개선을 위해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정리될 것”이라고 했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외국인과의 사회 통합을 위해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전제돼야 한다”며 “차별금지법은 처벌만 얘기하는 취지가 아니고, 정부가 적극 개입해 법에 따라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한다든지 여러 구제 조치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법무부 산하 ‘출입국·이민관리청’(이민청) 설립 논의 과정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창원 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국익 중심의 이민청 담론에 이민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어떻게 제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지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인종차별을 막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국민 개개인은) 한국인이 외국에 갔을 때 어떤 대우를 받고 싶은지 역지사지해 그런 마음으로 이민자와 외국인들을 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한국의 이주민들은 국적, 피부색 등을 이유로 숱한 차별을 받고 있다”면서 정부에 “이민정책을 말하려면 이주 노동자와 이주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진영·이정한·김건호·이복진·유경민·이예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