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유사한 형태의 보조금 정책 마련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보조금 정책에 인색했던 EU가 미국과 중국에 밀리면서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엔리코 레타 전 이탈리아 총리는 오는 17∼18일 EU 특별정상회의에서 발표할 보고서에 녹색경제 전환을 위해 범EU 차원에서 집행되는 새로운 보조금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할 계획이다. 블룸버그 통신, 유락티브가 각각 레타 전 총리의 보고서 초안을 입수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 중국 등에 맞선 유럽의 단일시장 경쟁력 강화 해법을 작성해달라고 벨기에가 지난 1월 공식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벨기에는 EU 상반기 의장국이다.
초안에 따르면 레타 전 총리는 “산업계에 대한 공공지원을 신속히 동원하면서도 단일시장의 파편화를 방지할 대담하고 혁신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며 “범유럽 계획·투자에 대한 재원 조달을 위해 각 회원국의 기여를 요구하는 ‘국가보조금 기여 메커니즘’을 구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보조금 안은 사실상 EU 기금을 조성해 산업계 유치에 공공자금을 투입하자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미 IRA 역시 경제 부양을 위해 5000억달러에 달하는 신규 지출 및 세금 감면 혜택 등 공공 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레타 전 총리는 범EU 기금이 현실화하면 미 IRA가 유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간 공정한 경쟁을 명분으로 보조금에 인색했던 EU는 IRA나 중국의 공격적인 보조금 정책 영향으로 유럽 기업이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불만이 나오자 뒤늦게 보조금 지급 규정을 일부 완화하는 등 대응책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규정을 일부 완화했음에도 사실상 개별 국가 차원에서 보조금 집행이 이뤄져 독일 등 부유한 국가에 신규 투자가 쏠리고 회원국 간 불균형이 심화한다는 불만이 내부에서 나왔었다.
일부 회원국은 EU 차원의 보조금 재원 조성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탄소중립산업법(NZIA) 등 각종 산업 육성법이 마련됐지만 IRA 만큼의 기업 유치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이번주 EU 특별정상회의에서 레타 전 총리의 보고서가 공식 발표되면 구체적 방법론에 관한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중국과의 경쟁 상황에서 유럽 경쟁력을 어떻게 강화할지는 이번 회의의 주요 안건 중 하나다. 조율 중인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도 “지정학적 긴장과 교역상대국의 적극적 보조금 정책으로 EU의 취약성이 노출됐다”며 새로운 ‘유럽 경쟁력 계획’(European Competitiveness Deal) 수립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로이터 통신, 폴리티코 등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