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세월호 증인’ 팽목항 기억되길

최근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향하는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팽목항의 방파제, 팽목기억관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10년 세월만큼이나 더 무겁게 느껴졌다. 바위에 새겨진 ‘그날의 기억! 책임! 약속!’ 이라는 문구를 곱씹어 보면 기억은 지워져 가고 책임은 수수방관하고 약속은 미뤄지는 현실 때문인지 모르겠다.

세월호 침몰 해역인 맹골수도에서 엄수된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선상 추모제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당일(16일) 유가족의 한 맺힌 선상 추모식을 보면서 마음 한쪽이 매우 무거워졌다.

김선덕 사회2부 기자

의·정 갈등이 한창일 때 낙도오지를 돌며 무료 진료하는 병원선에 올랐다. 이곳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해경보다 더 많은 승객을 구조한 어업지도선 선장을 만났다.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선장은 “세월호 참사 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제대로 이루질 못한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다면 더 많은 학생을 구조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세월호는 잊고 싶어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을 흐렸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 팽목항이다. 꼭 10년 전 팽목항은 희망과 슬픔이 교차하는 장소였다. 침몰된 세월호에서 구조 소식이 들릴 땐 가족들은 기쁨의 눈물을, 하얀 천으로 싸인 희생자가 구급차에 실릴 땐 눈물바다로 변했다. 세월호 가족은 1년간 팽목항에서 그렇게 생사를 같이했다. 당시 팽목항 주차장에는 추모관을 비롯해 기억관, 가족 숙소, 유물 보관소 등 추모 시설들도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기억에 남아 있던 추모 시설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 팽목항이 연안여객터미널로 개발되면서 이들 시설이 대부분 철거됐기 때문이다. 한 추모객은 “빛바랜 노란색 리본과 현수막이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서야 10년 전 비극의 현장임을 알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 상주 인원도 없는 ‘팽목기억관’이다. 철제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기억관은 10년 가까이 불법 가건물로 사용돼 왔지만 이곳을 관할하는 진도군은 추모 시설 전환에 미온적이었다. 10주기를 앞두고서야 공원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입장을 급선회했다.

그 대신 국가의 책임으로 지어진 추모 시설이 진도해양안전체험관이다. 지난해 연말 개관했지만 체험관을 이용하는 방문객은 극히 저조했다. 팽목항을 등지고 500여m 떨어진 곳에 지어져 접근성이 떨어진 탓이다. 또 다른 책임은 목포 신항만에 7년째 거치돼 있는 세월호 선체다. 선체가 녹슬고 부식이 심해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가족을 떠나보내고 3년상을 치르는 것처럼 세월호 유족들은 매일매일 10년상을 치렀을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는 차치하고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10년 전 겪은 뼈아픈 참사를 되새기면서 앞으로 내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모두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묵묵히 10년 전 참상을 목도한 팽목항 ‘그날의 기억’이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영원하길 바란다.


김선덕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