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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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현금’없이 살아보기 [김범수의 소비만상]

‘중국에서 현금없이 살 수 있을까.’

 

오늘날 중국은 사실상 ‘현금 없는 사회’에 도달했다. 오늘날 중국에서 물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결제를 할 때 대부분 ‘알리페이’, ‘위챗페이’를 사용하고 있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앱을 통해 물품대금을 지불하는 서비스는 한국에서도 ‘카카오페이’, ‘토스페이’ 등이 있다. 이용방법도 거의 비슷하다. 

 

다만 중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대부분 이 같은 간편결제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현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신용카드도 받지 않는 매장이 많다.

 

◆중국에서 현금없이 살아보기

 

기자는 중국에 있을 때 한 가지 실험을 해봤다. 과연 외국인 방문객 신분으로 ‘위안화’ 한 푼도 없이 중국에서 무사히 살 수 있을까.

 

실험을 위해 해외 방문 사상 처음으로 환전을 하지 않았다. 비상금 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출국 전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두 간편결제를 등록해놨다.

 

중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구매한 것은 탕후루였다. 탕후루의 원조 국가인 중국에서의 맛이 궁금했다. 베이징 시내 관광지 스차하이(什刹海)에 위치한 가판 상점에서 탕후루를 받아들고 알리페이를 실행시켰다. 알리페이 화면을 본 가게 주인은 계산기에 가격을 써주고 가판대에 매달린 QR코드를 가리켰다. 

 

중국에선 작은 액수라도 간편결제를 사용한다. 사진은 알리페이로 결제를 요구하는 탕후루 가게 주인 모습.

상점의 QR 코드를 인식하니 곧바로 결제 창으로 넘어갔고, 25위안(한화 4500원)을 입력하고 지불 버튼을 눌렀다. 결제가 성공했다는 알림음이 울리면서 지불은 끝났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시간과 비슷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알리페이로 택시를 타는 것 역시 간단했다. 알리페이를 실행하고 연동된 ’디디추싱’을 실행하면 바로 택시를 호출할 수 있다. 내가 있는 위치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요금이 정해지고 택시가 호출된다. 

 

카카오택시와 유사하지만, 디디추싱은 법인 택시가 아닌 개인의 자가용 차량이라는 점에서 ‘우버’에 더 가깝다. 택시에 내리면 최종적인 요금을 알리페이로 지불하면 끝난다. 

 

다양한 골동품과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베이징 판자위엔 시장 모습.

◆현금 없이 적선은 가능할까

 

노점상에서는 간편결제가 가능할까. 베이징 판자위엔(潘家園) 시장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골동품 상점이다. 건물에 위치한 상점도 많지만, 상당수가 시장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골동품과 모조품들을 잔뜩 진열해놓고 판매한다. 수상한 돌조각부터 찻잔, 고풍스러운 그림, 장식품 등 다양하다.

 

딱히 내키는 물건은 없었지만 전근대 중국 화폐로 쓰였던 ‘은자’ 모조품을 하나 집었다. 노점상 할머니는 처음에는 80위안(한화 1만5000원)을 불렀지만, 약간의 흥정 끝에 40위안(한화 7500원)으로 깎았다. 알리페이를 실행하자 노점상 할머니는 알리페이가 어렵다며 손을 가로저었다.

 

기념품을 판매하고 위챗페이로 결제하는 노점상인의 모습. 이 때 샀던 기념품은 호텔에 깜빡 놓고 왔다.

나중에 알아보니 최근 중국 내 결제시장에서 알리페이 점유율은 감소하고 있고, 위챗페이 점유율은 무섭게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중국 정부에서 알리페이를 견제하고 위챗페이를 밀어준다는 풍문이 있지만, 노점상 같이 규모가 작고 비교적 최근에 결제페이 시스템이 들어간 곳은 알리페이 사용이 어려웠고 위챗페이만 가능했다.

 

중국이 얼마나 현금없는 사회로 도달했냐면, 구걸하는 사람도 QR코드를 걸어놓고 위챗페이로 받고 있었다. 호기심에 위챗페이로 10위안 적선을 하니, 곧바로 송금이 이뤄졌다. 

 

카카오페이도 알리페이와의 제휴 덕분에 중국에서 사용 가능하다. 다만 카카오페이를 꺼내들면 열에 아홉의 중국인 표정은 ‘그게 뭐야?’라는 표정을 짓는다. 중국인은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화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한국의 카카오페이를 낯설어 하거나 믿지 못해서 결제를 받는 편이다.

 

◆외국인은 지하철을 타기 어렵다

 

‘중국에서 현금없이 살기’는 지하철에서 난관을 맞았다. 평소 해외에 가면 택시보다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중국 지하철을 타보려고 했다. 러시아 지하철과 비슷하게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지하철 티켓 키오스크로 갔다. 

 

행선지를 정하고 결제를 하려는데 간편결제 과정에서 계속 오류가 나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재시도 했는데도 결제가 되지 않았다. 소지품을 검사한 중국 공안에게 물어봤는데, 이 분들은 영어가 통하질 않는다. 중국에서 영어가 유창한 엘리트들이 공안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중국 공안은 비교적 친절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공안은 조금 전 신분 검사를 마친 행인 한 명을 내 앞에 데려왔다. 조선족 또는 한국어가 가능한 중국인 같았다. 서툴지만 한국어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중국 내 ID(주민등록증 같은 개념)가 없으면 인증을 할 수 없어 지하철 표를 살 수 없어요”라며 “현금으로는 살 수 있는데 현금이 있나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금은 없었고 지하철 표를 구할 수 없었다. 나중에 중국 현지인에게 부탁해 교통카드를 받아서 지하철을 탈 수 있었지만, 중국에선 자국 신분증 또는 휴대전화 번호가 없으면 지하철 표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은 현금 사회에서 신용카드 결제 단계를 건너뛰고 ‘현금 없는 사회’에 도달했다는 자부심이 큰 편이다. 다만 2020년데 들어서 반(反) 서방 기조로 돌아서면서 독자적인 표준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서방세게 기술 표준에 대한 저항이라는 명분이지만, 자신들의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갈라파고스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중국인은 중국에서 사는데 전혀 지장 없지만, 외국인은 신원 확인이 어려워 지하철은 물론 택배를 받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다.

 

평일 오후의 베이징 '짝퉁시장' 수수가 시장 모습. 과거 관광객이 붐볐던 것과 다르게 눈에 띄게 한산했다.

◆대표적인 짝퉁시장 ‘수수가’는 왜 망해가나

 

중국 제품하면 수 많은 이미지가 있지만 그 중 이른바 ‘짝퉁’이라고 불리는 가품도 많다는 이미지도 있다. 베이징에서 짝퉁제품을 주로 파는 시장으로 ‘수수가’(秀水街)가 있다. 

 

구경삼아 평일 낮에 찾은 수수가 시장은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불과 몇년 전에 사진으로 찍힌 수수가 시장은 ‘인산인해’라고 불릴만큼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뒤엉킨 모습이었다. 

 

비록 주말이 아닌 평일이라 손님 수가 적은 것일 수도 있었지만, 수수가 시장 건물 전체에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은 드물 정도였다.

 

이상한 마음에 수수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수수가에서 판매하고 있단 짝퉁이나 기념품은 중국 현지 쇼핑 플랫폼인 ‘타오바오’나 외국인 전용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에서 모두 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가격도 수수가에서 파는 것들이 적게는 50%, 많게는 두 배 이상 비쌌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 중국인은 “몇년전만 해도 수수가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크게 줄었다고 들었다”며 “앱으로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데 굳이 상인들과 기싸움을 해가며 수수가를 찾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햇다.

 

베이징 자금성에서 도장을 새겨주던 상인. 알리페이로 180위안(한화 3만4000원)을 받고 이름을 새겨줬다.

그렇다고 중국의 가품시장의 규모가 작아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가품시장 규모는 알리익스프레스나 타오바오 등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9~2023년 5년간 지식재산권을 침해해 세관 당국에 적발된 수입품 규모는 2조902억원(시가 기준)이었다.  이 중 중국산 ‘짝퉁’ 규모가 1조7658억원으로 84.5%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 1~2월 두 달간 적발된 중국산 짝퉁 수입품 규모는 593억원으로 작년(460억원)보다 29% 증가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