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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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의 없는 보건지소 수두룩… 농어촌 ‘의료 공백’ 비상 [심층기획-공보의가 줄어든다]

심상찮은 감소 추이
4월 중 복무 완료 인원 1018명
신규배정 716명… 역대 최저 수준
필수인력 못 채운 보건소도 늘어
전북은 147곳 중 80곳 공보의 0명

기피현상 심화 왜
37개월 긴 복무기간·강도 높은 업무
의대생·전공의 75% “현역입대 원해”
경력 단절·법적 책임 부담 등 이유도
“복무기간 합리적 조정 우선시 돼야”

“요즘 누가 공중보건의사를 지원하나요?”

 

올해 군 입영 대상자인 의대생 김모(20대)씨는 “동기와 공보의가 아닌 육군 현역병 동반 입대를 결정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민원이 들어온다”, “인력이 부족해 보건소 순회진료가 시작되면서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 “연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등 공보의 생활을 겪은 선배들로부터 지겹도록 들어온 이야기도 전했다.

 

무엇보다 37개월이란 긴 공보의 복무 기간은 김씨가 현역병 입대를 선택한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김씨는 “의대 학비를 국가에서 보조해 준 것도 아니고 개인을 희생해 가며 누가 3년 넘게 복무하려 하겠냐”면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변만 봐도 ‘공보의 대신 현역으로 가겠다’는 친구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공보의 수 ‘역대 최저’

 

해를 거듭할수록 공보의 수가 줄면서 지역·필수의료 공백 문제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가뜩이나 비수도권은 병원과 의사 수가 부족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많은데 설상가상으로 전공의 집단 파업에 따른 공보의 수도권 차출까지 이어지자 우려했던 지역의료 공백은 보다 악화하는 모양새다. 현행 공보의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배경이다.

 

민간병원이 없는 농어촌 마을은 공중보건의가 ‘유일한 의사’다.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병부터 뇌졸중·심장병 등의 중증질환까지 공보의가 아픈 주민을 살피며 의료 공백을 메꾼다. 하지만 최근 공보의 수는 급감하고 있다. 22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올해 신규 편입되는 공보의는 716명이다. 신규 공보의들은 이달 8일 중앙직무교육을 시작으로 복무를 시작했는데, 이 같은 신규 공보의 수는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이달 복무를 만료하는 인원은 1018명으로 신규 공보의보다 302명 더 많다. 다시 말해 공보의 수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공보의 수는 2021년 3523명에서 2022년 3365명, 지난해 3175명으로 매년 줄고 있다.

올해 17개 시·도 가운데 신규 배정된 공보의 수는 의료 오지로 꼽히는 전남이 20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북 94명, 경남 86명, 경기 82명, 전북 78명, 강원 61명 순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의료기관이 집중된 서울과 광주에 배정된 신규 공보의는 ‘0명’으로 확인됐다.

 

공보의가 줄면서 필수 인력을 채우지 못하는 보건지소 또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전북은 147개 보건지소 가운데 공보의가 한 명도 없는 곳이 80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 횡성군은 보건지소 3곳에 공중보건의를 배치하지 못했다. 삼척시 역시 공중보건의를 배치하지 못한 보건지소는 지난해 2곳에서 올해 3곳으로 늘었다.

 

부산시 관계자는 “공보의 수를 더 늘려주면 좋은데 우리보다 형편이 더 열악한 곳이 많아 부산만 늘려달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구군 관계자도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좋지 않은데 공보의 수 감소로 의료 공백이 더 심화하게 됐다”며 “궁여지책으로 시니어 의사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제도 개선해야”

 

공보의 수 감소는 의대에 여학생 비율이 증가한 데다 현역병 처우가 좋아진 영향이 크다. 같은 기간 일반 병사 월급은 올랐지만 공보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 복무기간에 대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군 현역으로 가면 18개월 만에 전역하지만, 공보의는 1979년부터 변함없이 37개월을 근무해야 해 복무 기간이 두 배 이상 길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지난해 5월 아직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의대생·전공의 1395명에게 설문한 결과 74.7%가 ‘공보의 대신 현역으로 입대하겠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긴 복무기간을 들었다. 이 밖에도 급여와 생활환경, 경력 단절, 법적 책임 부담, 과중한 업무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정부는 공보의 수도권 차출에 따른 의료 공백을 메꾸고자 ‘원격진료 확대’라는 카드를 꺼냈으나, 약국이 없고 보건지소만 있는 농어촌은 이 같은 대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보건행정시스템은 의사가 보건지소에 있을 때만 환자에게 약을 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어촌 의료의 최후의 보루인 공보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선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성환 대한공보의협의회장은 “수십년간 공보의 제도에 대한 처우 개선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앞으로 공보의 존립 여부까지 불투명한 상황이 놓였다”면서 “군사훈련기간(3주)을 제외하고 복무기간을 24개월로 줄인다면 공보의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생활환경이 불편하고 근무 강도가 높은 섬이나 오지 등에서 일하는 공보의라도 먼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망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병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최 의원은 “의료인이 지방 의료기관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공보의마저 수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지역의료 공백은 구멍이 뚫릴 것”이라면서 “복무기간을 합리적 조정하는 등 의료인이 공보의 복무를 기피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 때 지역 의료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