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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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사상 첫 G7 정상회의 참석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로마 교황은 휘하에 몇 개 사단이나 거느리고 있소?”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4년 모스크바를 찾은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를 상대로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현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이 했다는 말이다. 처칠은 소련이 이웃나라 폴란드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폴란드가 독실한 가톨릭 국가라는 점을 들어 ‘소련이 그렇게 해야만 바티칸 교황청과도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취지로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에 스탈린이 코웃음을 치며 던졌다는 말이 바로 ‘교황에겐 몇 개 사단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소련이 원하는 것은 강력한 군대일 뿐 종교 지도자의 축복 따위는 필요없다는 매몰찬 거부 의사의 표명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이 2021년 10월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탈린은 교황이 현실 정치와 무관하다고 봤는지 모르겠으나 이는 잘못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 간에 동서 냉전이 본격화한 뒤 교황은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2년 교황청은 요한 바오로 2세 당시 교황의 주도 아래 ‘핵무기 보유국들이 서로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군축을 해야 한다’는 강령을 채택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 스탈린의 후예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도 만났다. 그 직후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에서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비록 휘하에 거느린 사단은 없었으나 교황은 오직 정신의 힘으로 소련을 변화시켰고, 이는 몇 년 뒤 냉전 종식과 소련 해체라는 국제사회 대변혁으로 이어진다.

 

교황의 국제정치 개입과 관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 연설에서 “나의 호소는 무엇보다 러시아 연방 대통령을 향한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목해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전쟁이 장기화하자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조건없는 휴전과 평화협상을 촉구한 발언이었으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리 보고 백기 들고 항복하라는 얘기냐”고 항의하면서 국제적 논쟁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멜로니 총리는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교황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그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의장국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26일 “교황께서 G7 정상회의 중 인공지능(AI) 실무 세션에 참여할 것”이라며 “초청을 수락해준 교황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교황이 G7과 함께하는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AI라는 주제에 한정되긴 했으나 교황이 세계 주요 강대국 정상들과 나란히 있는 모습 자체가 대단한 볼거리 아닐 수 없다. 국제사회가 당면한 숱한 난제들에 대해 교황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