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돌발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단순히 환경 피해를 넘어 경제적 손실과 인명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하와이 마우이섬 서부 라하이나에서 지난해 발생한 산불은 미국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지난해 8월 마우이섬에선 폭염으로 급속히 진행된 돌발가뭄으로 며칠 만에 101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재산 피해는 약 55억2000만달러(약 7조23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당시 정확한 발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뭄과 강풍이 결합해 불이 확산했다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 봄과 여름 동안 가뭄이 이어졌고, 여기에 강풍이 더해져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것이다. 미국 통합가뭄정보시스템(NIDIS) 가뭄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6월13일 기준 마우이섬 지역의 3분의 2 이상이 ‘비정상적으로 건조한’ 단계 혹은 ‘보통 가뭄’ 단계로 나타났다. 같은 해 8월에는 지역의 80% 이상이 가뭄 단계에 포함되기도 했다.
하와이처럼 사계절 내내 따뜻한 날씨를 유지하는 지역에만 돌발가뭄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루이지애나에서는 지난해 8월 17개 지역에서 441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해 피해가 10월까지 지속됐다. 당시 산불로 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여의도 면적 약 84배에 이르는 2만4281㏊가 소실됐다. 미국의 경우 사계절이 뚜렷하고 봄철에 가뭄이 발생하는 등 우리나라와 유사한 기후특성을 나타내는 주가 많다. 국내에서도 돌발가뭄으로 인한 대형 재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돌발가뭄으로 여름철 대형 산불 증가
여름철 열돔현상(공기의 흐름이 엉키며 뜨거운 공기가 쌓이는 현상) 등 기온 상승에 따른 돌발가뭄으로 한반도에 여름 산불이 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열돔현상의 경우 상층의 티베트 고기압과 하층의 북서태평양 고기압 영향으로 발생해 폭염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
지난 3월 열돔현상으로 체감온도 섭씨 62.3도를 기록한 브라질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열돔현상에 따른 높은 기온으로 인한 돌발가뭄 심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2월 설립된 잠재재난위험분석센터는 지난 1월 올해의 잠재적 재난위험 중 하나로 돌발가뭄을 꼽았다. 센터는 “우리나라는 돌발가뭄에 따른 여름 산불 등에 관한 객관적 자료가 많지 않지만 최근 학계에서 돌발가뭄의 증가와 여름철 산불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있다”며 “열돔현상 및 기온 상승, 돌발가뭄 증가, 토양수분 감소 등을 고려할 때 여름철 대형 산불 피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짚었다.
국내에서 온난화에 따른 돌발가뭄 발생 횟수와 여름철 산불 발생 건수는 비례해 늘고 있다. 2016년과 2018년은 폭염일수(최고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날의 수)가 각각 24일, 35일로 가장 길었다. 2016년과 2018년에는 돌발가뭄이 각각 145회, 127회 발생했다. 같은 해 여름(7∼8월) 산불도 함께 증가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6년과 2018년 여름 산불은 각각 15회, 61회 발생했다. 반대로 돌발가뭄이 적었던 2015년과 2017년에는 각각 12회, 3회에 그쳤다.
정재학 잠재재난위험분석센터장은 28일 “산불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부분 ‘실화’이지만 돌발가뭄을 포함한 가뭄은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는 환경적 요인 혹은 간접 원인이 된다”며 “돌발가뭄은 산불 피해 이외에도 농작물 피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재난에 맞는 대책 필요
이상기온 및 돌발가뭄 등에 따른 새로운 재난에 맞는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 산림보호법 시행령 제22조에 따르면 산불조심기간은 매년 봄철(2월1일∼5월15일)과 가을철(11월1일∼12월15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여름 산불이 늘고 있는 만큼 산불조심기간에 여름철을 포함해 산불 진화 및 감시를 위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 센터장은 “(우리나라에서) 장기적으로 산불의 연중화에 대비해 산불재난특수진화대 고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 돌발가뭄에 대한 기초자료를 축적하고 기반기술을 확보하는 방안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센터는 매년 행정안전부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하는 ‘여름철 폭염종합대책’에 폭염으로 인한 돌발가뭄에 따른 여름 산불 발생 위험성 등을 추가하는 등 새로운 재난에 맞는 정책이 확립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돌발가뭄 ‘뉴노멀’돼야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돌발가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뉴노멀(새로운 기준·new normal)’이 됐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 (기후변화로) 더 뜨거워질 미래에 대비해 하루빨리 돌발가뭄에 적응해야 한다.”
돌발가뭄 전문가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제이슨 오트킨 교수는 자신이 참여한 논문 ‘기후변화로 인한 전 세계적인 돌발가뭄으로의 전환’에서 돌발가뭄이 ‘뉴노멀’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트킨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돌발가뭄의 급격한 악화 속도를 알면 매우 놀랄 것”이라며 “이 속도는 (인간이) 돌발가뭄에 대응하거나 완화하는 능력을 크게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재난 대비책만으론 새로운 유형의 재난을 예방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트킨 교수는 “미국에선 돌발가뭄으로 끔찍한 화재가 발생하는 등 재난이 이어지자 가뭄 완화 계획을 세웠지만 기존 가뭄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에 불과했다”며 “가뭄이 빠르게 진행하는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재난 대비 계획을 업데이트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수자원 인공위성’ 2027년 발사
봄·가을엔 가뭄과 산불, 여름엔 홍수와 같이 과거 재난은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로 예상치 못한 시기에, 생각보다 더 큰 강도의 재난이 발생해 인명 피해도 커지고 있다. 기후위기에 맞춰 대비할 수 있는 맞춤형 재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정부는 2022년부터 6년간 1509억원을 투입해 홍수와 가뭄 등을 감시하는 한국형 차세대 중형위성인 수자원위성 발사를 준비중이다. 국내 연구진이 자체 제작하는 수자원위성은 영상 관측을 통해 재난을 예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간 미국 또는 유럽과 같은 ‘기후 선진국’은 이상기후 대응 및 재해 예방 등을 위해 첨단위성 기술을 활용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 수자원위성이 없어 해외 자료를 구입해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한반도 지형 특성을 고려해 설계된 위성이 아니기에 정보 활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밤 시간대나 악천후에 관계없이 한반도 지표를 관측하고 빠르게 정보를 송신하는 기술을 장착한 수자원위성으로 국내 맞춤형 재해 대비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외국에서도 이상기후 현상이 심화하자 우주연구를 통한 재난 대비에 나서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기후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데, 지난해 6월 ‘지구정보센터’를 개소해 기후 데이터 분석에 나섰다. 지구정보센터는 25개 위성으로 관측하는 실시간 기후 데이터를 종합한 것으로, 정보를 분석한 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미 워싱턴 나사 본부에서 열린 기후 관련 기자회견에서 나사 산하 고다드우주연구소의 개빈 슈미트 소장은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변화를 마주했다. 2024년은 훨씬 더 더운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주 연구기관의 기후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기후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은 대기 중 주요 온실가스인 메탄 배출량을 추적하며 기후변화의 원인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2017년 대기 성분 관측 장비 ‘트로포미(Tropomi)’가 장착된 위성을 쏘아 올려 대기 중 메탄 분포량을 측정 중이다. 2022년 미국의 비영리단체 카본매퍼는 트로포미 관측 자료를 활용해 미국,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서 거대한 ‘메탄 기둥’이 포착됐다고 공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