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첫 양자회담을 갖고 소통의 첫발을 뗐지만, 의료개혁을 제외한 다른 쟁점에 대해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양측은 이 대표가 모두발언에서 언급한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문제와 연금개혁,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해병대 채 상병 관련 특검 수용 등 현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이 대표와 2시간15분 동안 차담 형식의 회담을 진행했다. 이 대표가 모두발언에서 “지난 2년은 정치가 실종되고 지배와 통치만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며 강경 어조로 국정 전반의 기조 변화를 요구하자,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양측은 의대 증원 필요성에 공감하고 앞으로 만남을 이어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대통령실 이도운 홍보수석은 회동 직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총론적·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며 “의료 개혁이 필요하고 의대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이어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현안에는 양측이 이견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25만원 지원금’ 요청에 대해 고물가 등 경제 상황을 감안했을 때 선별 지급이 현실적이고,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소상공인 지원, 서민금융 확대 정책 등을 먼저 시행한 뒤 추후 협의하자며 논의를 미뤘다. 민주당의 요구 사항인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수용에 대해서도 법리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을 해소한 뒤 논의하자는 입장을 취했다.
이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들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며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 수용을 사실상 요구했으나, 비공개 회담에선 김 여사 문제와 채 상병 특검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협의체에 대해선 이 대표 측이 “대통령이 결단하면 빠르게 집행·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거절했다.
이 대표는 이날 회담에 대해 “답답하고 아쉬웠다”며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별도 단독회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KBS 9시 뉴스에 출연해 “회담 말미에 제가 다음 번에는 형식·장소 구애 없이, 배석자 없이 만나시는 건 어떠냐고 말씀 드렸더니 두 분다 고개를 끄덕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이 영수회담 뒤 참모들과 한 회의에서 “다음에는 여야정을 하든, 영수회담을 하든 방식은 결정되는 대로 하고 (회담을) 자주 해야겠다”고 말했다고 홍철호 정무수석이 전했다. 이 수석은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을 통한 정치 복원”이라고 강조했다. 이 수석은 윤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념 기자회견 여부에 대해 “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회담에서 “김대중정부에서도 민정수석을 없앴다가 2년 뒤 다시 만들었는데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고 언급하며 대통령실 내 민정수석(또는 법률수석) 신설이 현실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